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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씁니다
“여기는 너 따위가 올 공간이 아니야!” 나무 막대기가 내 머리통을 울렸다. 선생이 들고 있던 나무 막대기는 지름이 3cm는 됐다. 막대기에 맞은 내 머리는 떨었다. 분노보다 무서워서 나는 떨었다. 내가 아주 큰 실수를 했다. 전교 10등까지만 모아놓은 자습실에 들어갔다가 수업이 시작한 줄도 모르고 놀고 있었다. 벌써 8년 전의 이야기다. 8년 전에 나는 빡빡이었고,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학교에서 먹는 저녁이 아직 낯설었다. 나는 가끔 자습을 빼먹어서 선생에게 뺨을 맞았고, 옆 교실의 친구들은 단체로 머리를 박았다. 어떤 친구는 수업 시간에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다가 엉덩이를 50대 맞았다. 아, 이 친구를 때린 선생이내 머리를 나무 막대기로 때렸다. 선생은 성적이 좋은 10%를 따로 모아 특반을 만들었..
저 멀리 있을 땐 겨우 얕은 일렁임 따위였는데, 뭍에 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고있으면 저것은 모래사장의 무언가를 닦아내는 것인지, 되려 모래로 더럽혀 지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파도가 거셀수록 바다와 모래의 경계는 두텁게 혼탁해진다. 이것은 경계의 당연한 속성이다. 펜 촉에 힘을 주어 선을 그을 수록 그 흔적은 깊게 남는다. 종이를 가로지르는 횡축(橫軸)의 짙은 선은 공간을 분리한다. 지평선은 땅과 하늘을 분리한다. 경계는 구별짓기의 결과이며 분리의 시작이다. 명확함은 모호함 보다 인기있다. 미덕으로 여겨지기도한다. 이도저도 아닌 미적지근한 커피는 팔리지도, 메뉴판에 적히지도 않는다. 부먹찍먹만큼의 논란을 야기하진 않겠지만, 은밀한 취향을 고백하자면 한참 식은 따뜻한 커피와, 얼음이 다녹아 컵..
오른쪽 광대 언저리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좀 더 정확한 위치 파악을 위해 눈을 세게 깜빡여보고 어금니를 앙다물어도 보았다. 아픔이 그렇게 크진 않았지만 있는 건 확실했다. 손을 가져다 대보았다. 중지 손가락으로 조금씩 광대를 눌러보며 생각했다. 어디서 다쳤지, 어디 부딪혔나. 방금 운동할 때 다친 건가. 왼편에 놓인 덤벨이 눈에 들어왔다. 이두 운동을 위해 신나게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한 감각이 아직 팔에 남아 있다. 앞에 있는 모니터로 나오는 예능을 보며 무아지경 속에서 운동한 탓에 기구가 얼굴에 부딪히는 것도 못 느낀 건가 싶기도 했다. 아닌데, 내가 좀 둔하긴 해도 그 정도는 아닌데. 덤벨을 제자리에 갖다 놓고 다시 앉았다. 아니면 스트레스 때문인가.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때 겪었던 고통들을 떠올려봤다..
형은 원래 아팠던 아이였다고 한다. 어머니는 자신이 헌신했던 아이, 그 아이와 맞이한 새벽들, 먹였던 음식들, 모두 끌어들여 말한다.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남편, 그러니까 나의 아버지는 형의 장례 이후에 어머니에게 고생했다고, 자신은 그동안 그 아이에게 잘 해주지 못했다고 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의 말을 듣고 가증스러움을 느꼈다.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냐, 있을 때 진즉에 잘 했어야지, 이 사람아.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통곡은 짜증 나고 쓸데없는 짓이었다. 집이 다 타버려서야 울리는 화재경보기처럼.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당시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더 그 아이에게 헌신했고, 아버지가 채워주지 못한 보살핌을 자신이 채웠다고 생각했더랬다.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고, 이만하면..
그녀가 허리를 숙였을 때 마스크 틈으로 그녀의 코와 입술이 보였다. 넋 놓고 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서둘러 눈을 돌린다. 눈동자가 한 바퀴를 돌아 그녀에게 향했을 때,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들켰다.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당연히 도망쳤지. 훔쳐보다 걸리면 종신형인 거 몰라?” 당황해서 눈이 마주친 채로 1초 동안 그대로 있었다. 아주 위험하고 바보같은 짓이었다. 내가 훔쳐봤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었다. 머리 위에서 종소리가 울리고 문이 열렸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문 밖으로 뛰었다. 내가 내려야 할 역까지는 아직 더 가야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나는 범죄 현장을 벗어났다. 시퍼런 피가 묻은 손을 닦아야 하지만 적어도 현행범 체포는 면했다. 그런데 이런 중대한 범죄를 ..
바람이 분다. 이렇다 할 방법없이 바람을 맞는다. 주로 무해하고 때론 기분이 좋기도 하니 별 말 없이 넘어가지만, 그렇다고 갑작스레 부는 바람을 맨몸으로 막아낼 방법이 뚜렷한 것도 아니다. 큰 저항 없이 바람은 우리를 스치고, 우리는 바람을 겪어낸다. 시간은 이런 바람 같다. 아무 저항감 없이 스쳐가는 바람도 수많은 겹을 덧대어 돌마저 깎는다. 의식해야 겨우 느낄 수 있는 시간의 흐름도, 나를 스치며 어제의 기억을 깎아낸다. 돌이 풍화에 깎이듯, 우리의 마음은 시간이 깎는다. ‘시간이 멈춘 듯’ 고통스러운 나날들이 있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시간이라는 약은 확인되지 않은 길거리 장수에게 산 것인지, 잘 듣지 않는 것 같다. 어떤 스님이 준 답이었나. ‘시간은 약이지만,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에겐 그 시간..
이런 얘기는 좀 쓸쓸하지만 해볼까? 너를 만나기 전 이야기야. 집에 들어가니까 심상치 않더군. 내가 보이자 식탁에서 옹기종기 모여있던 누나와 이모, 그리고 엄마가 갑자기 어수선해졌어. 나는 물을 마시고 내 방에 들어가 방문을 닫았지. 똑똑똑. “야, 나와봐.” 누나가 노크했어. 나는 결국 부엌에서, 그러니까, 어떤 상황인지를 알게됐지. 음, 엄마가 병에 걸렸다는 얘기였어. “별거 아니야.” 이모가 별것 아닌 척 말하더군. 기가 막혔지. 이런 일이 우리 가족에게도 생기다니. 나는 방에 들어와서 다리가 풀려버렸어. 대학 병원에 갔어. 침대는 바퀴달린 침대로, 밥은 죽으로 바꼈어. 병실을 나가서 중앙홀로 가면 자판기가 있고 긴 의자와 환자들이 많아. 병원이라는 사실만 빼면, 입고 있는 옷이 환자복이라는 사실만..
‘300’, 다시 봐도 ‘300’이다. 이상하다. 분명 ‘500’이어야 맞다. 내가 지불한 것은 틀림없이 10000원이었고, 그중 5%라 하면 ‘500’이다. 그런데 ‘300’이 적혀있다. 시스템 오류이려나. 하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봤을 때 의심해야 할 대상은 직감적으로 ‘나’였고, 어딘가에 숨어 있을 그 이유를 찾아보기로 했다. 나름 수년간의 노력이 담긴 ‘VIP 라운지’ 버튼을 눌렀다. 천천히 스크롤을 내리니 찾던 ‘3%’가 보였다. 찾았다. 상영 당일 전에 예매할 시 7%, 당일 예매는 3%를 적립해주는 게 그들의 입장이었다.(올해부터 바뀌었다고 한다······.)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이제 그 많은 영화들을 최소 상영 전날부터 계획을 세워서 봐야하나. 그리고 내가 얼마나 돈..
정오의 파란 하늘이었다. 마스크를 내리고 숨을 쉬고 싶은 충동이 생길 만큼. 개인 주택이나 공장 위주의 인적이 많지 않은 길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몇몇 사람이 보여 필터 없는 호흡은 좀 더 미루기로 했다. 앞에서 자전거가 다가왔다. 저 자전거만 지나가면 잠깐 마스크를 내릴 수 있겠지. 그런데 마스크 위로 보이는, 중년 여성의 시선이 나를 향해 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알아봤다’는 것처럼 고개를 조금씩 인사하려는 듯 움직임. 누굴까. 일단 이 길에서 나를 알아볼 사람은 방금 마치고 온 과외 학생의 가족 말고는 거의 없다.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그와 가까워졌다. 순간적으로 비슷할 수 있는 모든 이미지와 다 비교해 보았지만, 전혀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내게 인사했다. “어, 안녕..
수증기에 가려진 거울 너머에 내가 있다. 나는 보이지 않는 나를 보며 면도를 한다. 조심스럽게, 베이지 않도록, 수염이 난 방향으로. 이제 머리를 말리고 옷을 입고 출근한다. 시간이 없으니 무난한 옷을 고른다. 검정색 청바지에 맨투맨을 입고 서둘러 나온다. 출근하자마자 화장실에 들러서 일을 보고 거울을 보는데 아차. 수염 한 올이 튀어나와 있다. 아마 오늘 점심을 먹을 때, 커피를 마실 때나 친구를 만날 때 신경이 쓰일 거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갈 때까지 계속해서 수염 한 올이 거슬릴 거다. 그녀석을 잊어야 하나 기억해야 하나.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의식의 껍질을 뚫고 그녀석이 나오는데 어떻게 그래. 그녀석을 끄집어내서 품에 안은 채 울든가 억지로 저 깊숙한 곳으로 밀어놓은 채 잠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