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사랑 (14)
우리도 씁니다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name=https://blog.kakaocdn.net/dn/Jn0tP/btrdJ4IxUYu/6xPJsyqDgks7HyTcjuxKik/img.jpg)
"OO해." 내가 말했다. "뭐야?" 그녀가 당황했다. "새로 만든 단어야. ‘사랑해’보다 더 사랑한다는 뜻이야." "(웃음) 이상해." "그래?“ 사실 나 역시 ‘OO’이란 발음이 억지스럽다고 생각했다. 내가 먼저 물었나? 아마 그랬던 것 같다. 새벽의 통화에서였다. 나 말고 마지막 연애가 언제였냐는, 그런 식의 질문을 했다. 그녀는 내가 상처받을 것 같다는 말을 하며 주저했다. 그러다 혼자서만 간직하던 과거를 토해냈다. 내가 그녀에게 처음 말을 걸었을 땐 이미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해대겠지. 멍청한 놈. 그런 걸 왜 물어봐? 그러게 말이다. 결국 나는 가학적인 상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바로 내가 요즘 듣고 있는 '사랑해'가 그녀 입에서 음..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name=https://blog.kakaocdn.net/dn/bVDERh/btrcOeyL4qp/LjQWSI2kprvzlrOVmKlxiK/img.jpg)
1. 나는 사칙연산을 포함한 단순 계산을 시작으로, 고등학교 수학 과정을 거치며 어떤 공식이나 결과(수학적 정리)에 대한 증명을 마주하며 수학에 매력을 느껴왔다. 처음에는 그 과정 역시 시험이라는 틀 안에서 외워야 할 글과 수식의 나열에 불과했을지 몰라도, 이해하면서부터는 비슷한 모든 문제들이 도미노처럼 내 앞에서 굴복하듯 무너지기 시작하며 희열과 자신감을 생산해냈다. 그리고 고등학교 수학을 벗어난 수학의 ‘역사’와 그 사이에 생겨난 문제들을 마주했고 수학의 또 다른 방향을 알 수 있었다. 답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예를 들면 2차 방정식에는 ‘근의 공식’이 존재하지만, 5차 이상의 방정식에서는 근을 찾는 공식이 없고, 이는 증명된 사실이다. 또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그렇다. 굉장히 간단한 ..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name=https://blog.kakaocdn.net/dn/mzX5B/btrb8TwnpLP/iBlVceQq5NbOTlXfZ2typ1/img.jpg)
결혼생활은 세금 같았다고 한다. 기쁜 일 뒤에 오는 골칫덩어리였으니까. 행복은 딱 상상에서 멈췄다. 결혼‘생활’은 지금 가정이 결함 있는 인격체끼리 만나 이룬 것임을, 결혼생활에 재능이 없는 사람끼리 만난 것임을 깨닫게 해줬다고 한다. 그러다 딱 하나의 치명적인 사건으로 인해 그녀는 이 결혼생활이 ‘세금’이 아니라 ‘잘못 산 복권’ 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정떼기’ 경쟁에 돌입했다. 그리고 두 가지 선택지가 그녀 앞에 놓였다. 하나는 견디는 것. 다른 하나는 끝내는 것. 전자는 기혼, 후자는 이혼이었다. 그녀는 후자를 선택했다. 그녀는 바로 법원으로 돌진했고, 서류와 때려치우고 싶은 충동을 함께 움켜쥔 채 빠르게, 배짱 있게 절차를 돌파했다. 그리고 끝. 끝났다.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 식장에서..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name=https://blog.kakaocdn.net/dn/b8LsnZ/btq3DwowI49/NWJKnl6jGAxGB5ciUkpuOK/img.jpg)
2018.09.XX 늦은 답장을 써보려한다. 이제서야. 그래보려 한다. 헤아려보니, 달을 넘기고도 보름 즈음이 더 지났다. 네 편지를 받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굳이 바빴다거나, 그래서 겨를이 없었거나 하는 핑계를 댈 생각은 없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저 ‘답장을 쓸 수 없는 마음만이 가득 차 있는 시간을 보냈다.’ 라는 말 뿐이다.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질량을 품은 듯 무거운 펜은 편지지 위에 단 한 획조차 써 내리지 못하게 했다. 획이 더해질수록 펜의 무게보다 더한 중력이 내 마음을 짓누를까 두려웠던 것 같다. 겨우 막아놓은 댐이 무너지듯, 한 획 한 획에 굉음을 내며 무너질 슬픔이 두려웠다. 한번 터진 슬픔은 도저히 통제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name=https://blog.kakaocdn.net/dn/cjw0xs/btq2OqcdmRM/GYPZlCmr5KornbiYKt2jOK/img.png)
친구가 1년 동안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말한다. “나 수진이를 좋아하지 않았던 거 같아.” “거짓말. 너 걔랑 처음 사귈 때 입이 귀에 걸려 있었어.” “그거 연기한 거야.” “지랄.” “적어도 나는 기억이 안 나. 사랑은 영원할 수 없나 봐. 처음에는 너가 말한 것처럼 정말 좋았을 수도 있어. 그런데 그게 깎이고 깎여서 결국에는 기억조차 안나.” 친구는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에서 조엘은 사랑했던 연인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운다. 하지만 기억은 지워도 클레멘타인과 함께 했던 감정은 지울 수 없었다. 아니면 기억을 지우는 장치가 무의식까지 간섭하지는 못했거나. 어쨌든 조엘은 결국 클레멘타인을 잊지 못하고 다시 사랑을 고백한다. 친구의 기억은 조엘과 다른 순서로 지워졌다. 조엘의 기억은 가장 좋지 ..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name=https://blog.kakaocdn.net/dn/bHxmaq/btq2xbF2AJ4/gkFYW3gxtJtQ7kzYEqUv20/img.jpg)
♬OST: 김광민 - 작은 배 1. “나 왜 사랑해?” 전기장판을 틀면서 내가 물었다. “음...널 사랑하는데 이유가 어딨어.” 그녀가 대답했다. 이번엔 그녀가 질문했다. “넌 날 왜 사랑하는데? ” 2. 누군가 ‘자신을 왜 사랑하냐’고 물을 때, 대부분은 잠깐 당황한다. 당황한 사람은 청문회의 어벙한 장관 후보자처럼 어눌하게 뜸을 들이고, 물었던 사람의 눈동자는 어서 말해 보라며 무언(無言). 답할 사람은 클리셰(Cliché)를 사용할지, 독특한 답을 할지, 거짓의 성벽으로 사랑의 땅을 보호할지, 지금 생각한 답이 뒷감당을 할 수 있을지를 계산하고, 의문만 키우는 신중한 침묵이 너무 길지 않을까 걱정한다. 침묵은 배신이니까. 3. 순간 수 많은 선택지들이 눈 앞에 보인다. “인간성이 참 마음에 들어.”..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name=https://blog.kakaocdn.net/dn/bqCTB9/btq2tlOEim7/tLuhlkqrRb4hnlykvA7KO1/img.jpg)
♬방준석 - [남과 여 OST]. https://youtu.be/f2N4QH7T460 1. 계절은 우리를 질투했다. 물론, 우린 개의치 않았다. 한여름의 볕은 열기와 습함으로 맞잡은 두 손을 위협했지만, 후후 열을 식힐 지언정 그 손을 놓아야겠다는 선택지는 우리에게 없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한기가 아직은 낯선 가을, 미처 챙기지 못한 외투가 아쉬운 것은 내 감기보단 네가 느낄 추위가 걱정스럽기 때문이었다. 온 세상을 얼릴 듯 차가운 바람이 코 끝을 얼리더라도, 한참을 안고있어도 될 듯한 핑계를 주는 것 같아 겨울에겐 되려 고맙기도 했었다. 나의 계절은 너와의 기억으로 가득 차있다. 하지만, 이제 너로 가득한 내 계절들을, 그 순환인 일년을, 아니 몇 해를 모두. 단단히 묶어 네게 보낸다. 닿으면 전기라도..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name=https://blog.kakaocdn.net/dn/dQhgYZ/btq1Mq5Soj4/KYvDGebVLcJHEMvmaCNYj1/img.jpg)
아직 추운 날이었다. 지나가는 대학생들의 대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어색한 밤이었다. 젖은 바닥을 긁으며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도 들렸다. 준비한 말이 나오려다 목에 걸려 대롱대롱 흔들렸다. 다음에 말할까? 아니다. 오늘은 말해야 한다. 저기 걸어오는 학생들이 지나가고 나면 이야기해야지. 저기 보이는 버스정류장을 지나면 이야기해야지. 해야지, 해야지. 쑤욱. 내 팔 속으로 너의 팔이 들어왔다.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 나의 말이 나왔다. “우리 사귈래?” “그래.” 고개를 돌려 너를 보지는 못했지만 너는 소리 없이 웃었다. “오늘 그 말을 하려고 했어?” 너가 물었다. “아니. 다른 말을 하려고 했어.” “무슨 말을 하려고 했어?” 너가 다시 물었다. “나 너 좋아해.”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너를 봤지만 너가 ..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name=https://blog.kakaocdn.net/dn/d0BXZQ/btq0NvE0XiK/wIqm3egE6F4szJXnhbvAF1/img.jpg)
♬음악: Nils Frahm - My Friend the Forest “질문. 다른 나라로 간다면 어디서 살고 싶나요?” 그녀가 물었다. “음, 독일?”, “헐, 내가 가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그녀는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1년 정도 교환학생으로 독일에 갈 생각이었다고 고백했다. 독일? 왜? 그녀는 이유를 설명했다. 독일에는 유수한 제약회사가 많다고.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가 말하길, 만약 그녀가 독일이 마음에 든다면 독일 대학에 편입하고 그곳에 살아도 된다고 말했다고. 그때 나는 아찔함을 느꼈다. 순전히 우연이었다. 우리가 만난 것 말이다. 그 사실이 아찔했다. 그녀가 독일로 갔다면? 우리는 영원히 모르는 사이가 되었겠지. 통화가 끝나고 조건(if)이 많은 알고리즘들이 머릿속을 채웠다. 그리고 우리 사이를..
![](http://i1.daumcdn.net/thumb/C150x150/?fname=https://blog.kakaocdn.net/dn/baTMFt/btq0qAolWfD/ReZDKu50hHfQhsfPkm59t0/img.png)
어렸을 때 내가 쓰던 물건들은 대부분 누군가가 쓰던 물건들이었다. 형이 입었던 바지, 옆집 형이 탔던 자전거, 아래층 누나가 가지고 놀았던 소꿉놀이 세트를 조금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내가 물려받았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내가 제일 먼저 태어났더라면…’하고 생각했다. 내가 제일 먼저 태어났으면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을 오직 나만을 위해서 사야했을 테니까. 항상 남이 사용하던 물건을 썼기 때문에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새 물건을 동경했다. TV 광고에 나온 장난감은 완벽해 보였다. 글라스데코는 한 번도 짜지 않아 꽉 차 있었고 소꿉놀이 세트는 빳빳한 박스 안에 들어가 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저런 완벽한 물건을 어떻게 사용했길래 옆집 형과 아래층 누나는 물건에 때를 입혔을까. 나라면 그러지 않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