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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

우리도 씁니다 2021. 6. 29.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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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은 원래 아팠던 아이였다고 한다.

어머니는 자신이 헌신했던 아이, 그 아이와 맞이한 새벽들, 먹였던 음식들, 모두 끌어들여 말한다.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남편, 그러니까 나의 아버지는 형의 장례 이후에 어머니에게 고생했다고, 자신은 그동안 그 아이에게 잘 해주지 못했다고 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의 말을 듣고 가증스러움을 느꼈다.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냐, 있을 때 진즉에 잘 했어야지, 이 사람아.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통곡은 짜증 나고 쓸데없는 짓이었다. 집이 다 타버려서야 울리는 화재경보기처럼.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당시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더 그 아이에게 헌신했고, 아버지가 채워주지 못한 보살핌을 자신이 채웠다고 생각했더랬다.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고, 이만하면 할 만큼 했다고 자부했더랬다. 하지만 그 자부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이를 잃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헌신이 최선이었는지 의심스러웠고 후회가 밀려온 것이다. ‘더 잘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식으로. 뭐, 어쩌겠는가. 아, 아이는 영원히 떠났고, 그것으로 끝났다. 슬픔이 맑게 가라앉은 줄 알았던 어머니는 자신의 가슴이 시큰 거리는 걸 숨길 수 없었다.

 

나도 꾸역꾸역 나이를 먹었더니

이제 머리가 좀 커졌다. 그래서 이제 나는 ‘감히’ 고통의 무게를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나마 마음이 짐이 가벼운 쪽은 아버지보다 어머니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버지는 형에 대해 말한 적이 없지만 어머니는 형에 대해 말을 하기 때문이다. 말해진 고통은 이제 고통이 아니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최선과 후회.

전자는 불가능이고, 후자는 비극적이다. 부모 가슴에 새겨진 큰 상처를 보면서 나는 지난날 나의 허접한 일상들을 생각하곤 했다. 과거, 내게 주어진 공부가 두려워서 도피했었다. 도피해도 된다는 자신감의 근거는, 지금 생각해 보니, 젊음이었던 것 같다. 젊으니까. 시간은 많으니까. 괜찮아. 라는 식으로. 또 지난날 나의 허접한 연애도 생각났다. 권력은 나에게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사랑받는 것을 가볍게 여겼다. 그래도 된다는 자신감의 근거는, 지금 생각해 보니, 긴 시간동안 사랑이 지속될 거라는 망상이었던 것 같다. 걔는 날 사랑하니까. 시간은 많으니까. 괜찮아,라는 식으로. 그래, 그 생각은 오만했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어느새 버스를 놓친듯한 느낌이 들었고 연애는 어느 날 갑자기 끝났다. 인생을 살다 보니 나를 스쳐 지나간 것만 있었지 나에게 주어진 것은 없었다. 나는 아침과 밤마다 ‘아, 1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5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라고 중얼댔다. 후회가 남은 것이다. 나는 어머니가 형에게 했던 정성처럼,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어야 했다. 물론, 그런다고 후회가 남지 않을 거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해야 소중한 걸 낭비했다는 생각은 덜 할 테니까.

 

소중한 것은 우연의 재앙으로 쉽게 사라진다.

젊음, 타이밍, 사람, 사랑, 그 외 모든 소중한 것들. 항상 그렇지 않던가? 떠나는 것들은 지 마음대로, 얄밉게 떠난다. 남은 사람은 그것을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에, 복구할 수 없다는 현실에 자존감이 훼손당한다. 내 부모를 보고 얻은 교훈은 모두의 교훈이다. 인간은 후회한다는 것. 그것은 부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인간의 결점이라는 것. 그래서 나는 자주 다짐한다. 하루하루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더 마주치고, 사랑을 더 표현하고, 더 용기 내고, 더 양보하고, 더 공부하고, 하는 일에 더 정성을 다해야한다고. 매 시간을, 매 생각을, 매 숨결을 쏟아부으면서 후회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물론, 최선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후회와 자책보다는 고통스럽지 않다.  

 

 

 

 

by. 얼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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