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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씁니다
역사를 공부 중이다. 정확히는 한국사. 특정 시험의 합격이나 대단한 역사 이야기를 만들어 보겠다는 시도는 아니고,(물론 그런 부가적인 효과를 후에 기대할지도 모르겠지만,) 단지 그간의 내 행태를 돌아봤을 때 상식, 특히 역사에 대한 상식이 ‘독립운동가’와 ‘매국노’도 판별하지 못하는 가히 ‘매국노 수준’이라는 판단에서 시작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 등과 같은 역사 영화를 좀 더 재미있게 보고 싶어서인 것도 이유 중 하나이리라.(그런 점에서 이준익 감독의 영향이라 할 수도 있겠다.) 신유박해, 갑신정변, 을미사변 등 당시 사건을 4음절 단어들로 함축해놓은 것이 새삼 흥미롭게 다가오고, 역사의 흐름 속에서 ‘박해’, ‘정변’과 같은 의미가 맞물리며 머릿속에서 휘발되는 속도가 줄어든다. 너무 당연한 설명..
1. 그때 카페에서, 우리는 검은 소파에 앉아있었고 빛은 창문을 뚫고 들어와서 뺨의 솜털과 곰지락거리는 손가락, 그리고 손에 들린 컵을 비췄다. “그거 들었어?” 그녀는 나에게 최근에 일어난 범죄를 이야기해 줬다. 용의자는 아이의 엄마. 용의자의 DNA 검사. 99.9% 일치. DNA 검사를 반박하는 용의자. 용의자를 반박하는 과학수사. 그녀는 진지하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는 유전학을 전공한 사람이었다. 2. 나는 생각했다. 과학수사? 맞아, 얘 집 10분 거리에 과학 수사대가 있었지. 그러자 어떤 이미지 하나가 툭 떠올랐는데, 그 이미지는 묘사할 수 있을 정도로 뚜렷했다. 무대가 과학 수사대였다. 시간은 깜깜한 밤, 인물은 우리 둘과 지나가는 남자들. 크고 작은 소품들도 떠올랐다. 검은색 패..
대화 속 ‘기회’라는 키워드가 초중고 ‘무상급식’으로 이어졌다. 전반적인 통계를 보았을 때, 시행 초기에 발생했던 우려와 달리 이젠 무상급식의 긍정적인 효과를 부정하기 힘들어진 듯하다. 그리고 그 기대 효과 중 하나는 바로 ‘아이들이 눈치를 보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확한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위한 조사가 좀 더 필요하겠지만, 최근 ‘학교 폭력도 줄었다’는 해외 연구 결과가 나올 정도이니 큰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무상급식이 중단될 일은 없을 것 같다. 전면 무상급식이 시행되기 전, 선별 과정에서 신청 대상자인 아이들이 해당 신청서를 준비하고 제출하는 동안 당당하지 못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당연했으리라. 그런데 정말 주변 아이들은 그것을 놀림의 대상으로 삼고, 더 나아가 그것이 ‘학..
0. 사물(事物)은 딱딱한 명사가 아니다. 명사처럼 보일뿐이지 파면 팔수록 사물에서 어떤 것이 넘쳐흐르고 팽창하는데, 그것은 형용사도 있고 동사도 있는, 복합적인 이야기다. 이야기 안에는 논리와 오감과 정서가 있다. 문제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물은 기억 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문신처럼 말이다. 예를 들어볼까, 학교 첫날에 석유 냄새를 맡았다면 석유를 보고 맡을 때마다 학교 첫날이 생각나는 식이다. 1. 크리스토퍼 아이셔우드, 『싱글맨』, 조동섭, 그책, 2009. 2. 박완서, 『그 남자네 집』, 현대문학, 2008. [싱글맨] 1.1 짐(Jim)은 죽었고 조지(George)만 남았다. 아침, 조지가 잠에서 깨면 가만히 누운 채 천장을 보다가 벌거벗은 채 욕실로 비틀비틀 걸어간다. 소변..
홍상수 감독의 최신작을 보았다. 라는 제목의 영화인데, 늘 그래왔듯, 극적인 사건이 없을뿐더러 형식적인 변화도 두드러지지 않았다. (2011)이나 (2014)의 경우 형식적인 변화가 명확했고, (2010)는 네 편의 단편작들을 모아놓은 것이기에 그것만으로도 큰 변화이자 일종의 사건이었다. 을 기점으로 그의 영화는 점점 소설보다는 시적인 형식을 띠기 시작했고, 이번에도 그러한 형식적인 부분이 존재했지만, 그게 다인 것처럼 보인다. 물론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서는 여전히(작품성적인 측면이 아닌 존재감의 측면에서) 독보적인 형태였다. 그러나 2011년 이후 늘 그런 형식적인 모습에서만 흥미로운 것은 아니었다. (2017)는 누가 보아도 각본가이자 감독 자신의 상황임을 보여주는 내용을, 노골적으로 대사까지 사용해..
1. 의무경찰로 복무하던 시절, 소속된 경찰서의 관할구역을 방범·순찰하는 게 담당 임무 중 하나였다. 서너 명이 한 조를 이뤄 그 날 해당하는 일대를 조의 수만큼 나눠 순찰한다. 배정받는 곳들의 명칭은 ~초교(初校), ~사거리, ~역, ~소방서, ~파출소 등이다. 그런데 그중 눈에 띄는 곳이 하나 있었고, ‘~마트’가 바로 그것이었다.(사실 마트라기보다는 슈퍼에 더 가까웠지만.) 2. 내가 지금 사는 곳을 관할하는 경찰서 역시 존재하고, (지금은 해체됐지만)그곳에 소속된 의무경찰들이 타고 이동하는 경찰버스를 전역 후 가끔 볼 수 있었다. 집 근처에서 방범·순찰을 하는 그들의 모습을 직접 마주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 한 번은 우리와 가까이 사는 이모네 집 근처를 의무경찰들이 순찰하면 어떨까 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