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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겸

[소설] 시선1

우리도 씁니다 2021. 6. 2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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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허리를 숙였을 때 마스크 틈으로 그녀의 코와 입술이 보였다. 넋 놓고 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서둘러 눈을 돌린다. 눈동자가 한 바퀴를 돌아 그녀에게 향했을 때,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들켰다.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당연히 도망쳤지. 훔쳐보다 걸리면 종신형인 거 몰라?”

 

 당황해서 눈이 마주친 채로 1초 동안 그대로 있었다. 아주 위험하고 바보같은 짓이었다. 내가 훔쳐봤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었다. 머리 위에서 종소리가 울리고 문이 열렸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문 밖으로 뛰었다.

 내가 내려야 할 역까지는 아직 더 가야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나는 범죄 현장을 벗어났다. 시퍼런 피가 묻은 손을 닦아야 하지만 적어도 현행범 체포는 면했다.

 그런데 이런 중대한 범죄를 이렇게 쉽게 덮을 수 있을까.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다행이 이 역에 내린 건 몇 사람 되지 않고 그 중에 그녀는 없다. 지하철이 그녀를 싣고 저 멀리 가기를 바란다. 땅 위로 올라와서 동해 바닷가로 가버렸으면 좋겠다.

 대담하게 도망쳤지만 다음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심장이 귀 바로 옆에서 날뛰고 있는 것 같다. 고개를 들자 지하철 문이 오래 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열려 있었다. 문으로 급하게 뛰어 가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서 무릎이 구부려졌다.

 지하철이 출발하고 몸이 기운다. 나는 기둥에 몸을 기댄다. 5개 역을 더 가야 한다. 지하철이 출발하고 멈춘다. 또 출발하고 멈춘다. 다시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하철 안으로 대량의 빛이 쏟아진다. 지하철은 이제 대교 위를 지난다. 찢어진 구름 사이로 빛의 기둥이 비스듬히 내린다. 비록 희미하고 기울어졌지만 온 하늘을 지탱하고 있었다.

 모든 게 괜찮아지고 있다. 심장은 왼쪽가슴으로 돌아갔고 다리는 다시 단단해져서 나를 지탱하고 있다. 지하철이 부드럽게 다음 역에 도착하고 문이 열린다. 그녀가 앉아있다. 나는 급하게 고개를 숙인다. 봤을까. 나를 봤을까. 지하철이 빨리 출발하기를 바란다.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뛴다. 지하철 문이 닫히고 출발한다.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든다. 

“내려.”

그녀가 나를 노려보며 말한다.

 그녀의 미간에 주름이 진다. 그녀는 다음 역에도 열리지 않을 문으로 나를 밀어붙인다. 앙다문 입술이 마스크 너머로 그려진다. 나는 또 범죄를 범하고 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음 역을 기다린다. 지하철 안의 사람들이 좌로 우로 흔들린다. 파도에 밀려 가볍게 고개를 흔드는 수초들. 그녀의 어깨 너머로 문이 열리고 물이 빠져나간다. 나는 순순히 그녀를 따라 나간다.

 

 근데 경찰에는 안 잡혀갔네? 여자가 신고는 안 했나봐? 무슨 제안이라도 했어? 거래를 한 거야? 설마…



(다음 화에 계속…)

 

 

 

 

by. 김도겸

 

김도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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