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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네요

우리도 씁니다 2021. 6. 4.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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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의 파란 하늘이었다. 마스크를 내리고 숨을 쉬고 싶은 충동이 생길 만큼. 개인 주택이나 공장 위주의 인적이 많지 않은 길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몇몇 사람이 보여 필터 없는 호흡은 좀 더 미루기로 했다.

앞에서 자전거가 다가왔다. 저 자전거만 지나가면 잠깐 마스크를 내릴 수 있겠지. 그런데 마스크 위로 보이는, 중년 여성의 시선이 나를 향해 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알아봤다’는 것처럼 고개를 조금씩 인사하려는 듯 움직임.

누굴까. 일단 이 길에서 나를 알아볼 사람은 방금 마치고 온 과외 학생의 가족 말고는 거의 없다.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그와 가까워졌다. 순간적으로 비슷할 수 있는 모든 이미지와 다 비교해 보았지만, 전혀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내게 인사했다. “어, 안녕하세요!”

모르는 사람이 확실했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인사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다행히도 자전거라 휙, 서로 지나쳤다. 걷다 마주쳤으면 멈춰 선 뒤 상대가 오해했는지, 아니면 내가 못 알아본 건지 명확했을 것이다.

 

*

 

일단 마스크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누군가를 닮았다는 얘기야 꽤 많이 듣는 편이었고,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렸으니 아는 사람이라 오해할 만하다. 아니면 상대가 끼고 있던 마스크가 그 반대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아는 사람의 얼굴을 반이나 가려놨으니 못 알아본 것.

아니, 어쩌면 혹시 내가 모를 수밖에 없는 사람이 아닐까?

아무래도 내가 그 작품의 연출자라는 것을 알아본 것 같다. 프로필로 올린 사진이 지금과 많이 다른 편임에도 알아봤나 보다. 하긴 최근에 작품 하나를 더 찍기도 했고, 지금 이렇게 쓰는 것처럼 주기적으로 글을 올리니, 뭐 알아볼 만도 하다. 물론 당황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모르는 사람이 점점 인사를 해올 때마다 헷갈리면 어떡하지. ‘내가 아는 사람’인데 ‘나를 알아본 사람’이라 착각해 인사를 받기만 하고 지나간다면·······.

생각해보니 예전에 독립 단편영화 상영이 끝난 뒤 지나가며 한 배우에게 인사를 건넨 게 생각났다. 너무 자연스럽게 인사한 탓인지 당황한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무슨 마음이었는지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를 알아보았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 인사를 건넸다는 것에 막연히 기분이 좋아지는 건 사실인 듯하다.

 

*

 

소설이냐고? 망상이다. 지나가다 자전거를 탄 누군가 갑작스럽게 내게 인사를 건넨 건 사실이다. 그저 그가 착각한 것이었지만, 앞선 문단은 ‘날 알아본 게 맞고, 나는 모르는 사람이면?’이라는 자문에서 시작된 설정이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상상이다. 하지만 어차피 그쪽에서 착각한 것은 사실이고, 집 가는 길에 잠시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보고 싶었다. 근데 이게, 생각보다 괜찮다.

어쩌면 그 ‘인사’ 자체가 기분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생일날 톡으로 가볍게 보낸 축하 한 마디처럼,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인사가 가진 좋은 힘이 있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면 혹시 자전거를 탄 그는 그저 누굴 마주하던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날의 파란 하늘이 다시 떠올랐다. 유난히 날씨가 좋았던 것 같다.

다시 마주친다면 기분 좋게 인사하는 것도 좋겠다.

“날씨가 좋네요.”

 

 

 

 

by. 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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