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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겸

그날 이후

우리도 씁니다 2021. 6. 1.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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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증기에 가려진 거울 너머에 내가 있다. 나는 보이지 않는 나를 보며 면도를 한다. 조심스럽게, 베이지 않도록, 수염이 난 방향으로. 이제 머리를 말리고 옷을 입고 출근한다. 시간이 없으니 무난한 옷을 고른다. 검정색 청바지에 맨투맨을 입고 서둘러 나온다. 출근하자마자 화장실에 들러서 일을 보고 거울을 보는데 아차. 수염 한 올이 튀어나와 있다. 아마 오늘 점심을 먹을 때, 커피를 마실 때나 친구를 만날 때 신경이 쓰일 거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갈 때까지 계속해서 수염 한 올이 거슬릴 거다.

 

 그녀석을 잊어야 하나 기억해야 하나.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의식의 껍질을 뚫고 그녀석이 나오는데 어떻게 그래. 그녀석을 끄집어내서 품에 안은 채 울든가 억지로 저 깊숙한 곳으로 밀어놓은 채 잠을 자든가 선택해야 한다. 당연히 나는 항상 그녀석을 끄집어낸다.

 끄집어내면 딸려오는 것은 항상 비슷하다. 국밥 한 그릇에 국물을 추가해가며 소주를 마시던 모습, 눈을 뜨면 바로 앞에 너의 얼굴이 보이던 겨울, 괜찮은 것 같던 목소리, 나무판자와 울음 속에 눈감은 너의 모습.

 너는 갔다. 힘든만큼 기쁘지 않아서. 우리는 남아서 울었다. 너가 없는 게 힘들어서. 그래서 힘들어하는 너를 붙잡아 뒀나보다. 내 욕심이었나. 그런 생각도 해본다. 갑자기 미안해져서 사과를 하고 싶었다. 전화를 하려고 핸드폰을 들었다가 깜짝 놀라서 핸드폰을 내려 놓았다.

 

 “00아.”

다이소에서 물건을 사다가 깜짝 놀라서 돌아봤다. 뒤에 있는 사람이 너와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과 전화를 하나보다.

 

5월 4일에 죽음은 사건이었다. 사건으로의 죽음은 끝났다. 너가 노래했던 것처럼 “Nothing die forever.” 하지만 상태로의 죽음은 이제 막 시작되어 산 사람들을 휘감고 있다. 우물 속에 갇히기라도 한 것처럼 산 사람들은 죽음에 둘러싸여 있다.

 무릎을 안은 채 모여 있는 사람들이 너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너의 죽음과 삶을 멋대로 해석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니가 맞네 내가 맞네 우긴다. 곧 침울해져서는 서로가 아는 너의 이야기를 퍼즐 맞추듯이 수집한다. 해석이 너를 대체해 버릴까봐 무섭다. 말 많고 고집 세던 너는 산 사람의 해석으로 대체될 수 없으니 해석으로 대체되는 순간 너는 없어지는 거다. 변명할 수 없는 너를 위해, 나는 무릎에 고개를 묻는다. 그러고는 너를 조심스럽게 떠올리기만 한다.

하지만 머지않아 대체될 거다. 많이 돌린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지듯이 아무 말 없이 너의 기억을 뽑아내는 것도 너를 변형시킨다. 나는 너의 모든 순간을 기억할 수 없으니 내가 기억하는 순간은 선택된 것이고 해석된 것이니까.

 나는 이게 제일 슬프다. 언젠가 사라져 버릴 시그니피앙. 저마다 다른 너의 시그니피이를 갖고 흩어질 산 사람들. 너에 대한 해석을 보며 나는 살아있는 너를 느끼고 싶어한다.

 

끝나지 않는 상태로의 죽음은 지금도 내 방안의 공기를 짓누르고 있다. 존재감을 과시하는 죽음 앞에 쫄아서는 울면서 온갖 기억들을 휴지 뽑듯이 뽑아낸다. 또 너를 생각하고 머릿속이 너와 너의 죽음으로 채워진다. 그러니 쓰지 않고는 못 버티겠다. 너를 해석하고 찢어버리며 죽음에 익숙해져야 한다.

 

 요즘 그렇게 산다. 아침마다 작아진 눈으로 면도도 제대로 못하고 산다.

 

 

 

 

 

 

by. 김도겸

 

김도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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