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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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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염증이 떠들썩해지기 이전엔 찜질방을 즐겨갔다. 다른 곳보다, 목욕탕 내에 있는 습식사우나를 좋아했다. 습식사우나 안에서는 땀과 분무가 섞여 오래있지 않아도, 땀에 흠뻑 젖은 것 같은 꼴이 된다. 그 성분의 진정성에 대해 의심할지언정, 많은 땀을 흘렸을 때 느끼는 뿌듯함을 느끼는데는 큰 차이가 없다. 몸에 맺힌 물방울이 둘 중 어느 것인지 보다 나의 만족감이 더 중요했다. 사우나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 효능에 대한 공감과 필요 보단, 흠뻑 땀을 흘렸다는 효용감에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명하게도, 우리는 (특히 나는)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다. 누가보더라도 나은 대안이 있더라도,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이해되지 않는 선택을 할지라도 ‘나의 효용감’ 때문이라는 이유를 붙이면, 그건 시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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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있을 땐 겨우 얕은 일렁임 따위였는데, 뭍에 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고있으면 저것은 모래사장의 무언가를 닦아내는 것인지, 되려 모래로 더럽혀 지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파도가 거셀수록 바다와 모래의 경계는 두텁게 혼탁해진다. 이것은 경계의 당연한 속성이다. 펜 촉에 힘을 주어 선을 그을 수록 그 흔적은 깊게 남는다. 종이를 가로지르는 횡축(橫軸)의 짙은 선은 공간을 분리한다. 지평선은 땅과 하늘을 분리한다. 경계는 구별짓기의 결과이며 분리의 시작이다. 명확함은 모호함 보다 인기있다. 미덕으로 여겨지기도한다. 이도저도 아닌 미적지근한 커피는 팔리지도, 메뉴판에 적히지도 않는다. 부먹찍먹만큼의 논란을 야기하진 않겠지만, 은밀한 취향을 고백하자면 한참 식은 따뜻한 커피와, 얼음이 다녹아 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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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이렇다 할 방법없이 바람을 맞는다. 주로 무해하고 때론 기분이 좋기도 하니 별 말 없이 넘어가지만, 그렇다고 갑작스레 부는 바람을 맨몸으로 막아낼 방법이 뚜렷한 것도 아니다. 큰 저항 없이 바람은 우리를 스치고, 우리는 바람을 겪어낸다. 시간은 이런 바람 같다. 아무 저항감 없이 스쳐가는 바람도 수많은 겹을 덧대어 돌마저 깎는다. 의식해야 겨우 느낄 수 있는 시간의 흐름도, 나를 스치며 어제의 기억을 깎아낸다. 돌이 풍화에 깎이듯, 우리의 마음은 시간이 깎는다. ‘시간이 멈춘 듯’ 고통스러운 나날들이 있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시간이라는 약은 확인되지 않은 길거리 장수에게 산 것인지, 잘 듣지 않는 것 같다. 어떤 스님이 준 답이었나. ‘시간은 약이지만,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에겐 그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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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XX 늦은 답장을 써보려한다. 이제서야. 그래보려 한다. 헤아려보니, 달을 넘기고도 보름 즈음이 더 지났다. 네 편지를 받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굳이 바빴다거나, 그래서 겨를이 없었거나 하는 핑계를 댈 생각은 없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저 ‘답장을 쓸 수 없는 마음만이 가득 차 있는 시간을 보냈다.’ 라는 말 뿐이다.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질량을 품은 듯 무거운 펜은 편지지 위에 단 한 획조차 써 내리지 못하게 했다. 획이 더해질수록 펜의 무게보다 더한 중력이 내 마음을 짓누를까 두려웠던 것 같다. 겨우 막아놓은 댐이 무너지듯, 한 획 한 획에 굉음을 내며 무너질 슬픔이 두려웠다. 한번 터진 슬픔은 도저히 통제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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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오늘을 생각하며, 2년 전 오늘 적은 글입니다. 오늘은 비가올 듯 날이 흐립니다. 흐린 하늘에 그 이름들을 한번 더 아로새겨야겠습니다. 1. 오늘(2019.04.16)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에 탔다. 13세기에 지어진 뼈대를 포함한 성당의 지붕은 1시간 만에 연소로 붕괴되었고, 프랑스와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마치 8세기의 시간이 소실된 것과 같은 충격이었다. 유산이라 부르며 중요하게 여겼지만, 이 역시도 유한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며 기회가 될 때마다 얼른 보러다녀야겠다는 냉소적인 생각이 든다. 벌써 꽤 오래 전, 우리 문화재인 숭례문도 불에 탄 적이 있다. 우리도 지금 프랑스국민들과 마찬가지로 충격에 휩싸였던 기억이 있다. 이내 복원사업을 시작했고 지금은 옛 모습을 되찾았다. 복원은 소실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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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준석 - [남과 여 OST]. https://youtu.be/f2N4QH7T460 1. 계절은 우리를 질투했다. 물론, 우린 개의치 않았다. 한여름의 볕은 열기와 습함으로 맞잡은 두 손을 위협했지만, 후후 열을 식힐 지언정 그 손을 놓아야겠다는 선택지는 우리에게 없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한기가 아직은 낯선 가을, 미처 챙기지 못한 외투가 아쉬운 것은 내 감기보단 네가 느낄 추위가 걱정스럽기 때문이었다. 온 세상을 얼릴 듯 차가운 바람이 코 끝을 얼리더라도, 한참을 안고있어도 될 듯한 핑계를 주는 것 같아 겨울에겐 되려 고맙기도 했었다. 나의 계절은 너와의 기억으로 가득 차있다. 하지만, 이제 너로 가득한 내 계절들을, 그 순환인 일년을, 아니 몇 해를 모두. 단단히 묶어 네게 보낸다. 닿으면 전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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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꽤 아득한 과거처럼 느껴지지만, 지금처럼 온라인이 아닌 교실에서, 사회적 거리 따위는 신경 쓰지 않으며 수업을 들을 수 있던 때가 있었다.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꼭 들어야 하는 전공 수업들 이외에는 다양한 분야의 수업을 들으려고 노력했다. 특히 대학생 딱지를 붙인 지 몇 학기 지나지 않았을 때까진, 전공은 경제학이지만 음악을 하겠다 마음먹은 나의 시간표엔 ‘문학’과 ‘철학’이 들어간 강의가 빠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마음으로 아무 노래나 만들고 싶지 않았다. 노래를 발표한다는 것은 책을 출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남는 흔적이 생기는 것이니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부끄럽지 않았으면 했다. 그럼에도 졸작을 내어 놓은 부끄러움을 떨칠 수 없지만, 서툴고 어리숙했을지언정 최선이었다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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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복히 엉기며 세상의 모든 색을 지운다. 파란 하늘마저 눈의 기세가 익숙한 듯 제 빛을 사위고, 세상은 온통 하얗다. 눈은 하늘과 땅, 그 사이 모든 구별을 거부한다. 온갖 경계에 달라붙어 그것을 희미하게 만든다. 길 가의 창에 비친 내 어깨를 보니, 시린 손에 꼭 쥔 우산이 무색하다. 진작에, 내 코트도 그 경계를 잃고 있다. 이게 차가운 건지, 포근한 건지. 어깨에 갈앉은 눈을 보다 코 끝이 시큰해졌다. 내일이면 녹아 모두 제 빛을 되찾더라도, 나만은 이대로 지워지면 좋겠다. 네게 가닿지 않은 나의 사랑에도 무겁게 엉겨붙어라. 대답을 듣지 못해, 독백이 된 마음들에도 재빨리 달라붙어라. 뒤엉키고 떨어져, 누구의 발이든 밟히고 깨져라. 녹아라. 멀리 흘러라. 그 와중에는 네가 아닌 눈 탓을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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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는 사람만 알겠지만 나는 곡을 쓰고, 노래한다. 그것을 꽤 진지하게 생각하고 좋아한다. 하지만, 버젓한 이름이 있음에도 무명을 벗어나진 못하고 있다.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나만 알고 싶은 가수’여서 그럴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수년 전, 음악을 시작해야겠다 마음을 먹은 후로 오픈마이크1) 무대에 종종 올랐다. 공연장을 대관하기에는 티켓 파워가 약했으니, 무대에 서기 위해선 무료로 무대에 설 기회는 주되 페이는 주지 않는 무대만이 당시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었다. 나도 몇 번 무대에 서기도 했던 홍대의 U카페에 손님으로 찾아간 날이었다. 평일 저녁이라 해도, 제법 북적이던 기억과 달리, 조금 시간이 지나자 나와 일행만이 유일한 손님인 모양이 되었다. 두 팀의 오픈마이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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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에 전입한지 오래지 않았을 때, 불침번 관련 교육을 받았다. 시간만 때우지 말고 성실히 경계근무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더불어 타 중대에서 취침 시간에 손목을 그은 대원 이야기가 나왔다.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오래도록 나오지 않아 불침번 대원이 확인을 했고, 그 덕에 큰일을 치르지 않고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해당 대원에게 특별 외박을 줘야 한다, 훌륭한 대원이다. 칭찬이 한동안 마르지 않았다. 이야기는 그 뿐이었다. 잠을 못 이루고, 사람들의 의식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밤시간을 기다려, 날카로운 것과 혼자만의 공간을 찾아야했던 대원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무엇이 그를 삶에서 소외되게 만들었는지,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낫다는 이승을 포기하게 하였는지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오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