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씁니다
오늘의 통증 본문
오른쪽 광대 언저리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좀 더 정확한 위치 파악을 위해 눈을 세게 깜빡여보고 어금니를 앙다물어도 보았다. 아픔이 그렇게 크진 않았지만 있는 건 확실했다. 손을 가져다 대보았다. 중지 손가락으로 조금씩 광대를 눌러보며 생각했다. 어디서 다쳤지, 어디 부딪혔나. 방금 운동할 때 다친 건가. 왼편에 놓인 덤벨이 눈에 들어왔다. 이두 운동을 위해 신나게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한 감각이 아직 팔에 남아 있다. 앞에 있는 모니터로 나오는 예능을 보며 무아지경 속에서 운동한 탓에 기구가 얼굴에 부딪히는 것도 못 느낀 건가 싶기도 했다. 아닌데, 내가 좀 둔하긴 해도 그 정도는 아닌데. 덤벨을 제자리에 갖다 놓고 다시 앉았다.
아니면 스트레스 때문인가.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때 겪었던 고통들을 떠올려봤다. 영화제작 준비 과정에서 얻는 스트레스 때문에 잇몸이 약해진 적이 있다. 평소와 같은 양치질이었는데, 처음 느낀 따가움에 바로 입속을 헹구면서 말 그대로 피를 본 적이 있었다. 가볍게 생긴 생채기 역시 힘든 시기엔 오래 남아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금도 비슷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여전히 조금씩 느껴지는 이 통증의 원인을 나열해보기 위한 접근 중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광대의 통증을 더 명확하게 인지하려는지, 계속해서 눈을 깜빡였다. 그렇게 큰 고통이 아니기에 일주일 정도 후면 씻은 듯이 낫겠지만, 그 여전히 그 원인에 대해 감이 잡히지 않았다. 되려 그 불확실함이 또 다른 불안함으로 이어질 것 같은 예감, 잠깐 어쩌면 심각한 병일지도 몰라. 두려움에 방을 나가 거실에 있는 큰 거울 앞에 섰다. 눈을 크게 뜨며 광대를 들여다보았다. 원인이 밝혀졌다. 어젯밤 그곳에 난 뾰루지 하나를 없애겠다고 신나게 면봉을 들고 같은 거울을 보며 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 목적 달성과 함께 뿌듯한 마음으로 면봉을 쓰레기통에 버려 놓고도, 기억이 안 나 혼자 그런 난리를 친 것이다.
마음이 편해졌다. 짐작으로만 존재하던 원인이 명확해지자 그 고통조차 내 통제 안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문득 이런 바보 같은 순간을 짧은 이야기로 만들면 어떨까 싶어졌다. 동시에 몇 달 전 간단한 영화 워크샵 회의에서 들었던 한 사람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며칠 동안 새벽 4시에 기상해야 할 정도로 바빴던 시기가 있었다고 했고, 일터로 가는 그 시간 동안 초록 창 사이트의 실시간 인기 검색어엔 늘 ‘오늘의 운세’가 떠 있었다고 한다. 의문이 들었다. 왜 사람이 붐벼 숨 막힐 듯한 오전 7시와 9시 사이의 출근 시간이 아닌, 그 새벽 시간에 ‘오늘의 운세’가 그렇게 필요했던 것일까.
방금 거울 속에서 고통의 원인을 찾고 안정감을 느낀 나의 속단(速斷)은 이렇다. 6시도 되지 않은 피곤한 시간에 일어나 일하러 가야 하는 사람들, 빈자리가 더 많은 지하철의 풍경은 충분한 공감을 자아내는 만인의 일상이 아니라고 느껴진다. 그 ‘불안’은 자연스럽게 ‘원인’을 찾아보기 위해 과거로 역행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연일지도 모르고, 전혀 기억나지 않는 본인의 무의식적인 선택이나 실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명확하지 않고, 이것이 의지의 결과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적어도 만들어서라도 그 이유를 찾고 싶어진다. ‘오늘의 운세’는 그렇게 이른 시간부터 마주한 ‘무질서’를 잠시나마 ‘질서’로 만들며 그날의 불안을 잠재운다.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바닥 한쪽에 놓인 작은 덤벨이 보였다. 거울을 보지 않았더라면 저걸 들어서 통증이 있는 부위를 두드려보며, 이유를 찾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by. 환야
환야
브런치 : https://brunch.co.kr/@ssklsypen
우리도 씁니다.
인스타 @ussm._.nida
블로그 https://blog.naver.com/ussm2020
티스토리 https://wewritetoo.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