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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겸

나무 막대기

우리도 씁니다 2021. 7. 15.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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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는 너 따위가 올 공간이 아니야!”

 나무 막대기가 내 머리통을 울렸다. 선생이 들고 있던 나무 막대기는 지름이 3cm는 됐다. 막대기에 맞은 내 머리는 떨었다. 분노보다 무서워서 나는 떨었다. 내가 아주 큰 실수를 했다. 전교 10등까지만 모아놓은 자습실에 들어갔다가 수업이 시작한 줄도 모르고 놀고 있었다.

 벌써 8년 전의 이야기다. 8년 전에 나는 빡빡이었고,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학교에서 먹는 저녁이 아직 낯설었다. 나는 가끔 자습을 빼먹어서 선생에게 뺨을 맞았고, 옆 교실의 친구들은 단체로 머리를 박았다. 어떤 친구는 수업 시간에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다가 엉덩이를 50대 맞았다. 아, 이 친구를 때린 선생이내 머리를 나무 막대기로 때렸다.

 선생은 성적이 좋은 10%를 따로 모아 특반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중 10명을 뽑아 자습실을 쓸 수 있게 해주었다. 자습실에 10명 이외의 학생은 출입할 수없었다. 나는 특반에는 들었지만 자습실에는 들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시험이 끝나면 성적 순으로 앞자리부터 채워 앉았다. 나보다 앞에 앉으면 나보다 성적이 좋은 학생이었고 뒤에 앉으면 성적이 안 좋은 학생이었다. 교실을 한 번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친구들 간 서열을 알 수 있었다.

 8년이 지났고 지금이다. 대부분 지역에서 야자는 더이상 의무가 아니다. 3cm로 머리를 밀어야 했던 두발규정은 없어졌다. 하지만 사람을 줄세우고, 대학교를 줄세우는 학벌주의는 여전하다.

 학벌주의가 문제인 이유 중 하나는 유명한 대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전적으로 개인의 능력에 달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0년 서울대에 입학하는 학생 중 62.9%가 소득 9분위 이상 가정에서 자랐고 SKY대학에 입학하는 학생 중 55.1%가 소득 9분위 이상 가정에서 자랐다. 유명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

부모의 소득 뿐만 아니라 운이 작용할 수도 있다. 운이 좋아 좋은 스승을 만나거나,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운이 좋아 성적 순으로 대학교에 입학하는한국에 태어날 수도 있다.

 유명 대학교에 가는 것은 실력만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유명 대학교 출신이 실력 있다고 인정한다. 그리고 유명 대학교 출신에 박수를쳐주고 명예를 부여한다. 운이 좋아 유명 대학교에 들어갔다면 박수를 쳐야 할 이유가 있을까?

 유명 대학교의 학생들이 과대평가받고 있다고 생각할지라도 합리적인 유명 대학교 재학생이라면 고등학생 후배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학벌로 모든 것을 판단하면 안 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러분을 학벌로 판단합니다. 그러니 학벌주의가 나쁘다고 생각하되, 좋은 학벌을 가지려고 노력하세요.”

 이런 모순이 합리적인 선택이 되는 상황이 슬프다. 합리적이라는 변명으로 학벌주의를 물려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도 모순된 구조의 한 톱니바퀴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내 머리통을 울렸던 나무 막대기로 내 머리를 내리쳐 본다. 통. 통. 통. 빈 하늘로 퍼지는 소리.

 

 

 

 

by. 김도겸

 

 

김도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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