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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야

저기 둘리가 지나간다

우리도 씁니다 2021. 6. 1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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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다시 봐도 ‘300’이다. 이상하다. 분명 ‘500’이어야 맞다. 내가 지불한 것은 틀림없이 10000원이었고, 그중 5%라 하면 ‘500’이다. 그런데 ‘300’이 적혀있다.

 

시스템 오류이려나. 하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봤을 때 의심해야 할 대상은 직감적으로 ‘나’였고, 어딘가에 숨어 있을 그 이유를 찾아보기로 했다. 나름 수년간의 노력이 담긴 ‘VIP 라운지’ 버튼을 눌렀다. 천천히 스크롤을 내리니 찾던 ‘3%’가 보였다. 찾았다. 상영 당일 전에 예매할 시 7%, 당일 예매는 3%를 적립해주는 게 그들의 입장이었다.(올해부터 바뀌었다고 한다······.)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이제 그 많은 영화들을 최소 상영 전날부터 계획을 세워서 봐야하나. 그리고 내가 얼마나 돈을 써 왔는데. 물론 별수 없다. 그러나 뭔가 배신당한 느낌이었고, 앞으로는 그들이 의도한 3% 없이 철저히 계획을 세워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솟구쳤다. 화장실로 가던 참이었지만, 몸을 돌려 다시 앉았다. 그리고 7%로만 계산했을 때 다음 VIP를 위해 얼만큼의 작품들을 봐야하는 지 따져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나게 숫자를 쓰던 도중 한 배우의 얼굴이 머리를 스쳤다.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은 놀이공원도 함께. 그가 아이들을 위해 사비(수백억 원)를 들여 만든 공간이었다. 1990년에 개장한 뒤, 무료입장을 고집해오다가 결국 자금난을 비롯한 여러 문제 때문에 두 차례 정도 운영을 중단했다고 하는데, 최근 재개장을 했다고 들었다. 그 전보다 좀 더 다양한 시설을 추가했고, 직원도 몇 배나 더 뽑았다고 하며 이에 따라 이용요금이 생겼다. 그의 인터뷰에 따르면 시설 유지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이 선택 대해 직접 전화를 걸어 욕설을 하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간 무료로 운영해 온 사실뿐 아니라 해당 가격은 아주 비싼 것이라 말하기 힘들고 규모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작은 놀이 시설보다 훨씬 저렴한 곳인데, 가격을 높였다는 이유로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게 안타까웠다. 또 다른 배우의 얼굴이 생각났다. 영화 속에서 검사를 연기하던 얼굴. “호의가 계속되면······.”

 

누굴 뭐라 할 처지가 아니었다. 영화든 놀이공원이든 각자의 처지가 있고 그에 따른 선택이 존재한다. 그간 느껴온 즐거움은 지속하고 싶다면 당연히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만두지 못하고 불만이 생긴다면 그만큼 내게 필요한 것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치가 오르는 것은 자명한 경제원리이기도 하다.

 

펜을 든 손, 그 밑에 있는 종이를 다시 보았다. 몇 줄의 계산 과정이 적혀있었다. 몇 년 전 같으면 계산이 아니라 그 많은 영화를 언제 몇 시에 볼지 계획을 세우고 있었을 것이다. 그 순수한 즐거움이 어디로 숨어버린 걸까. 아니, 내가 숨겨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내 작품을 찍으면서 그간 무시할 수 없다고 느껴온 자본의 힘은 어느 순간 훨씬 더 크게 다가왔고, 시간이든 돈이든 간에 한 편을 보더라도 최대한의 효율을 생각하면서 이것저것 따지고 선택하기 시작했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게 업무의 일부가 된 것이 아닌가 싶어졌다. “답답하네 ‘OTT’가 있잖아.” 누군가 훈계하듯 말하지만, 아직 그 큰 화면을 비롯해 약속하듯 제시간에 도착해 착석하는 그 여정의 매력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아직 여백이 많이 남은 페이지를 넘겼다.

 

아까 가려던 화장실을 다녀왔다. 해결된 것이 배설의 욕구만은 아닌 것 같다.



 

 

by. 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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