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전체 글 (107)
우리도 씁니다
우씁니다 페이지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한지 네 달 정도 흘렀다. 매주 하나씩 글을 쓰는 데에도 조금은 익숙해졌다. 하지만 익숙해진다고 글을 쓸 때 들어가는 시간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어떤 때는 세 시간 만에 써 버리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며칠을 공들여 쓰기도 한다. 레베카 솔닛은 맨스플레인에 대한 에세이 를 쓸 때 순식간에 썼다고 한다. 는 자신을 가르치려 드는 남성에 대한 일화로 글을 시작한다. 이 남성은 솔닛의 말을 중간에 끊으면서 권위적인 태도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나중에는 한 책을 꼭 읽어야 한다고 역설하는데, 그 책은 솔닛이 쓴 책이었다. 글은 곧장 강간 문화와 여성의 생존권으로 흘러간다. 여성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고 신빙성 없는 이야기라고 여기는 사회이기 때문에 데이트 폭력이나 강간이..
1. 타자 속도가 (상당히)느린 편이었다. 컴퓨터 앞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남들의 손을 보며 신기함은 느껴도 크게 부러움이나 경쟁심리가 작동하지 않았고, 입시 때까지도 컴퓨터로 하는 거라곤 몇 단어를 조합한 검색이나 게임이 다였다. 즐겼던 PC 게임 역시 각종 무기를 사용하며 팀원과의 빠른 소통이 필요한 콘텐츠보다는 자족(自足)감이면 충분한 것들이었기에 속도감 있는 타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했다. 자연과학부에 속한, 펜과 종이면 충분한 전공인 것도 그렇고, 수업 계획서 등을 찾아보며 팀플이나 리포트 위주의 과제가 거의 없는 수업들을 교양으로 채웠기에 졸업을 위한 학기들의 반이 끝날 때까지도 타자의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생각했다. 여섯 번째 학기가 시작되었다, 상대적으로 ‘리포트..
♬음악: Nils Frahm - My Friend the Forest “질문. 다른 나라로 간다면 어디서 살고 싶나요?” 그녀가 물었다. “음, 독일?”, “헐, 내가 가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그녀는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1년 정도 교환학생으로 독일에 갈 생각이었다고 고백했다. 독일? 왜? 그녀는 이유를 설명했다. 독일에는 유수한 제약회사가 많다고.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가 말하길, 만약 그녀가 독일이 마음에 든다면 독일 대학에 편입하고 그곳에 살아도 된다고 말했다고. 그때 나는 아찔함을 느꼈다. 순전히 우연이었다. 우리가 만난 것 말이다. 그 사실이 아찔했다. 그녀가 독일로 갔다면? 우리는 영원히 모르는 사이가 되었겠지. 통화가 끝나고 조건(if)이 많은 알고리즘들이 머릿속을 채웠다. 그리고 우리 사이를..
어렸을 때 내가 쓰던 물건들은 대부분 누군가가 쓰던 물건들이었다. 형이 입었던 바지, 옆집 형이 탔던 자전거, 아래층 누나가 가지고 놀았던 소꿉놀이 세트를 조금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내가 물려받았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내가 제일 먼저 태어났더라면…’하고 생각했다. 내가 제일 먼저 태어났으면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을 오직 나만을 위해서 사야했을 테니까. 항상 남이 사용하던 물건을 썼기 때문에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새 물건을 동경했다. TV 광고에 나온 장난감은 완벽해 보였다. 글라스데코는 한 번도 짜지 않아 꽉 차 있었고 소꿉놀이 세트는 빳빳한 박스 안에 들어가 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저런 완벽한 물건을 어떻게 사용했길래 옆집 형과 아래층 누나는 물건에 때를 입혔을까. 나라면 그러지 않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