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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겸

빠른 글쓰기[3월 : '글쓰기'에 대하여]

우리도 씁니다 2021. 3. 26.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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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씁니다 페이지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한지 네 달 정도 흘렀다. 매주 하나씩 글을 쓰는 데에도 조금은 익숙해졌다. 하지만 익숙해진다고 글을 쓸 때 들어가는 시간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어떤 때는 세 시간 만에 써 버리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며칠을 공들여 쓰기도 한다.

레베카 솔닛은 맨스플레인에 대한 에세이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쓸 때 순식간에 썼다고 한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자신을 가르치려 드는 남성에 대한 일화로 글을 시작한다. 이 남성은 솔닛의 말을 중간에 끊으면서 권위적인 태도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나중에는 한 책을 꼭 읽어야 한다고 역설하는데, 그 책은 솔닛이 쓴 책이었다.

글은 곧장 강간 문화와 여성의 생존권으로 흘러간다. 여성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고 신빙성 없는 이야기라고 여기는 사회이기 때문에 데이트 폭력이나 강간이 만연한 거라고. 여성을 가르치려는 태도와 강간 문화는 동일한 이데올로기를 공유하고 있다고.

이런 에세이는 과학적이지 않고 논리적으로 완전하지도 않다. 사회적인 구조를 통찰하는 작업은 엄격한 동료 평가를 겪은 논문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 에세이를 문학으로 보면 에세이는 충분히 의미 있다. 개인적인 일화가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얻었고 이 공감이 사회적 구조로 비약하는 과정에도 힘을 실어준다.

 

“글은 쓰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경주로에 나서고 싶어서 안달복달하고 있었다.”

(p.26,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솔닛)

 

솔닛의 글은 한껏 고양되어 있다. 무언가를 마음 속에 쌓아 두었다는 것조차 몰랐을 때 글쓰기는 분출구가 된다. 그리고 이럴 때의 글쓰기는 배설의 시원한 쾌감을 주고 글 쓴 사람을 흥분시킨다.

 

하지만 윤동주는 글이 쉽게 쓰여지는 데에서 쾌감을 얻기보다는 부끄러워했다. 부끄러워한 이유로 “인생이 살기 어렵다”고 말한다. 인생이 살기 어려우면 시 쓰기도 어려워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런데 나는 슬픈 삶에서 슬픈 시가 나와야 한다는 데에는 수긍이 가지만 시가 나오는 과정이 어려워야 한다는 데에는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윤동주도 알고 있었을 거다. 자신이 살기 어려운 삶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기 때문에 글이 쉽게 쓰여졌다는 것을. 오히려 고민이 없으면 아무런 글도 쓸 수 없다는 것을.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는 시구는 인생이 그만큼 살기 어렵다는 반어적인 표현이거나 겸손한 표현이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쉽게 쓰여진 시>, 윤동주

(카라바조가 그린 바쿠스)

 우씁니다에서 매주 한 편씩 글을 올린지 4개월이 지났다. 글을 주기적으로 쓰다 보니 나도 글을 빠르게 쓴 적이 몇 번인가 있다. <2021 새해>를 쓸 때가 그랬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계획했던 일들을 하지 못한 답답한 마음이 2020년을 보내면서 허무로 변했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다른 사람들의 성취와 비교했을 때 나는 쪼그라들었다.

그런 마음을 글로 적기 시작했을 때, 글은 스스로 나아갈 방향을 알고 있는 듯했다. 글이 완성되니 복잡한 마음을 털어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글쓰기는 대부분 느리고 고통스럽게 진행된다. 하지만 가끔씩은 글쓰기가 빠르게 진행되고 취한듯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



 

 

by. 김도겸

 

 

김도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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