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전체 글 (107)
우리도 씁니다
친구가 1년 동안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말한다. “나 수진이를 좋아하지 않았던 거 같아.” “거짓말. 너 걔랑 처음 사귈 때 입이 귀에 걸려 있었어.” “그거 연기한 거야.” “지랄.” “적어도 나는 기억이 안 나. 사랑은 영원할 수 없나 봐. 처음에는 너가 말한 것처럼 정말 좋았을 수도 있어. 그런데 그게 깎이고 깎여서 결국에는 기억조차 안나.” 친구는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에서 조엘은 사랑했던 연인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운다. 하지만 기억은 지워도 클레멘타인과 함께 했던 감정은 지울 수 없었다. 아니면 기억을 지우는 장치가 무의식까지 간섭하지는 못했거나. 어쨌든 조엘은 결국 클레멘타인을 잊지 못하고 다시 사랑을 고백한다. 친구의 기억은 조엘과 다른 순서로 지워졌다. 조엘의 기억은 가장 좋지 ..
7년 전 오늘을 생각하며, 2년 전 오늘 적은 글입니다. 오늘은 비가올 듯 날이 흐립니다. 흐린 하늘에 그 이름들을 한번 더 아로새겨야겠습니다. 1. 오늘(2019.04.16)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에 탔다. 13세기에 지어진 뼈대를 포함한 성당의 지붕은 1시간 만에 연소로 붕괴되었고, 프랑스와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마치 8세기의 시간이 소실된 것과 같은 충격이었다. 유산이라 부르며 중요하게 여겼지만, 이 역시도 유한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며 기회가 될 때마다 얼른 보러다녀야겠다는 냉소적인 생각이 든다. 벌써 꽤 오래 전, 우리 문화재인 숭례문도 불에 탄 적이 있다. 우리도 지금 프랑스국민들과 마찬가지로 충격에 휩싸였던 기억이 있다. 이내 복원사업을 시작했고 지금은 옛 모습을 되찾았다. 복원은 소실된 ..
♬OST: 김광민 - 작은 배 1. “나 왜 사랑해?” 전기장판을 틀면서 내가 물었다. “음...널 사랑하는데 이유가 어딨어.” 그녀가 대답했다. 이번엔 그녀가 질문했다. “넌 날 왜 사랑하는데? ” 2. 누군가 ‘자신을 왜 사랑하냐’고 물을 때, 대부분은 잠깐 당황한다. 당황한 사람은 청문회의 어벙한 장관 후보자처럼 어눌하게 뜸을 들이고, 물었던 사람의 눈동자는 어서 말해 보라며 무언(無言). 답할 사람은 클리셰(Cliché)를 사용할지, 독특한 답을 할지, 거짓의 성벽으로 사랑의 땅을 보호할지, 지금 생각한 답이 뒷감당을 할 수 있을지를 계산하고, 의문만 키우는 신중한 침묵이 너무 길지 않을까 걱정한다. 침묵은 배신이니까. 3. 순간 수 많은 선택지들이 눈 앞에 보인다. “인간성이 참 마음에 들어.”..
♬방준석 - [남과 여 OST]. https://youtu.be/f2N4QH7T460 1. 계절은 우리를 질투했다. 물론, 우린 개의치 않았다. 한여름의 볕은 열기와 습함으로 맞잡은 두 손을 위협했지만, 후후 열을 식힐 지언정 그 손을 놓아야겠다는 선택지는 우리에게 없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한기가 아직은 낯선 가을, 미처 챙기지 못한 외투가 아쉬운 것은 내 감기보단 네가 느낄 추위가 걱정스럽기 때문이었다. 온 세상을 얼릴 듯 차가운 바람이 코 끝을 얼리더라도, 한참을 안고있어도 될 듯한 핑계를 주는 것 같아 겨울에겐 되려 고맙기도 했었다. 나의 계절은 너와의 기억으로 가득 차있다. 하지만, 이제 너로 가득한 내 계절들을, 그 순환인 일년을, 아니 몇 해를 모두. 단단히 묶어 네게 보낸다. 닿으면 전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