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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씁니다
아직 추운 날이었다. 지나가는 대학생들의 대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어색한 밤이었다. 젖은 바닥을 긁으며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도 들렸다. 준비한 말이 나오려다 목에 걸려 대롱대롱 흔들렸다. 다음에 말할까? 아니다. 오늘은 말해야 한다. 저기 걸어오는 학생들이 지나가고 나면 이야기해야지. 저기 보이는 버스정류장을 지나면 이야기해야지. 해야지, 해야지. 쑤욱. 내 팔 속으로 너의 팔이 들어왔다.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 나의 말이 나왔다. “우리 사귈래?” “그래.” 고개를 돌려 너를 보지는 못했지만 너는 소리 없이 웃었다. “오늘 그 말을 하려고 했어?” 너가 물었다. “아니. 다른 말을 하려고 했어.” “무슨 말을 하려고 했어?” 너가 다시 물었다. “나 너 좋아해.”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너를 봤지만 너가 ..
대화 속 ‘기회’라는 키워드가 초중고 ‘무상급식’으로 이어졌다. 전반적인 통계를 보았을 때, 시행 초기에 발생했던 우려와 달리 이젠 무상급식의 긍정적인 효과를 부정하기 힘들어진 듯하다. 그리고 그 기대 효과 중 하나는 바로 ‘아이들이 눈치를 보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확한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위한 조사가 좀 더 필요하겠지만, 최근 ‘학교 폭력도 줄었다’는 해외 연구 결과가 나올 정도이니 큰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무상급식이 중단될 일은 없을 것 같다. 전면 무상급식이 시행되기 전, 선별 과정에서 신청 대상자인 아이들이 해당 신청서를 준비하고 제출하는 동안 당당하지 못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당연했으리라. 그런데 정말 주변 아이들은 그것을 놀림의 대상으로 삼고, 더 나아가 그것이 ‘학..
1. 를 시작한 지 다섯 달. 매주 멤버에게 글 피드백을 받는다. “이건 무슨 뜻이야?”, “이 표현 억지야”, “이렇게 고치는 건 어떨까?”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혼자 볼 때 보이지 않았던 어처구니없는 문장이 보인다. 어젯밤에 속으로 외쳤던 ‘완벽해’라는 말은 허무하게 폐기처분된다. 이해가 가지 않은 적도 있었다. ‘왜 너는 이해를 못 하지?’ 고집도 있었다. ‘너를 위해 내 말을 포기해야 하나? 하지만 그런 똥고집만 부릴 거면 일기나 쓰는 게 낫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2.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와 「개발자의 글쓰기」를 읽었다. 두 책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나는 글쓰기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글은 상대방과 소통하고 교감하도록 만들어져야 하는 ‘도구’라는 것. 다시 말해, 글은 다른..
1. 꽤 아득한 과거처럼 느껴지지만, 지금처럼 온라인이 아닌 교실에서, 사회적 거리 따위는 신경 쓰지 않으며 수업을 들을 수 있던 때가 있었다.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꼭 들어야 하는 전공 수업들 이외에는 다양한 분야의 수업을 들으려고 노력했다. 특히 대학생 딱지를 붙인 지 몇 학기 지나지 않았을 때까진, 전공은 경제학이지만 음악을 하겠다 마음먹은 나의 시간표엔 ‘문학’과 ‘철학’이 들어간 강의가 빠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마음으로 아무 노래나 만들고 싶지 않았다. 노래를 발표한다는 것은 책을 출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남는 흔적이 생기는 것이니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부끄럽지 않았으면 했다. 그럼에도 졸작을 내어 놓은 부끄러움을 떨칠 수 없지만, 서툴고 어리숙했을지언정 최선이었다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