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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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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허리를 숙였을 때 마스크 틈으로 그녀의 코와 입술이 보였다. 넋 놓고 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서둘러 눈을 돌린다. 눈동자가 한 바퀴를 돌아 그녀에게 향했을 때,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들켰다.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당연히 도망쳤지. 훔쳐보다 걸리면 종신형인 거 몰라?” 당황해서 눈이 마주친 채로 1초 동안 그대로 있었다. 아주 위험하고 바보같은 짓이었다. 내가 훔쳐봤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었다. 머리 위에서 종소리가 울리고 문이 열렸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문 밖으로 뛰었다. 내가 내려야 할 역까지는 아직 더 가야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나는 범죄 현장을 벗어났다. 시퍼런 피가 묻은 손을 닦아야 하지만 적어도 현행범 체포는 면했다. 그런데 이런 중대한 범죄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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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이렇다 할 방법없이 바람을 맞는다. 주로 무해하고 때론 기분이 좋기도 하니 별 말 없이 넘어가지만, 그렇다고 갑작스레 부는 바람을 맨몸으로 막아낼 방법이 뚜렷한 것도 아니다. 큰 저항 없이 바람은 우리를 스치고, 우리는 바람을 겪어낸다. 시간은 이런 바람 같다. 아무 저항감 없이 스쳐가는 바람도 수많은 겹을 덧대어 돌마저 깎는다. 의식해야 겨우 느낄 수 있는 시간의 흐름도, 나를 스치며 어제의 기억을 깎아낸다. 돌이 풍화에 깎이듯, 우리의 마음은 시간이 깎는다. ‘시간이 멈춘 듯’ 고통스러운 나날들이 있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시간이라는 약은 확인되지 않은 길거리 장수에게 산 것인지, 잘 듣지 않는 것 같다. 어떤 스님이 준 답이었나. ‘시간은 약이지만,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에겐 그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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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얘기는 좀 쓸쓸하지만 해볼까? 너를 만나기 전 이야기야. 집에 들어가니까 심상치 않더군. 내가 보이자 식탁에서 옹기종기 모여있던 누나와 이모, 그리고 엄마가 갑자기 어수선해졌어. 나는 물을 마시고 내 방에 들어가 방문을 닫았지. 똑똑똑. “야, 나와봐.” 누나가 노크했어. 나는 결국 부엌에서, 그러니까, 어떤 상황인지를 알게됐지. 음, 엄마가 병에 걸렸다는 얘기였어. “별거 아니야.” 이모가 별것 아닌 척 말하더군. 기가 막혔지. 이런 일이 우리 가족에게도 생기다니. 나는 방에 들어와서 다리가 풀려버렸어. 대학 병원에 갔어. 침대는 바퀴달린 침대로, 밥은 죽으로 바꼈어. 병실을 나가서 중앙홀로 가면 자판기가 있고 긴 의자와 환자들이 많아. 병원이라는 사실만 빼면, 입고 있는 옷이 환자복이라는 사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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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다시 봐도 ‘300’이다. 이상하다. 분명 ‘500’이어야 맞다. 내가 지불한 것은 틀림없이 10000원이었고, 그중 5%라 하면 ‘500’이다. 그런데 ‘300’이 적혀있다. 시스템 오류이려나. 하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봤을 때 의심해야 할 대상은 직감적으로 ‘나’였고, 어딘가에 숨어 있을 그 이유를 찾아보기로 했다. 나름 수년간의 노력이 담긴 ‘VIP 라운지’ 버튼을 눌렀다. 천천히 스크롤을 내리니 찾던 ‘3%’가 보였다. 찾았다. 상영 당일 전에 예매할 시 7%, 당일 예매는 3%를 적립해주는 게 그들의 입장이었다.(올해부터 바뀌었다고 한다······.)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이제 그 많은 영화들을 최소 상영 전날부터 계획을 세워서 봐야하나. 그리고 내가 얼마나 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