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씁니다
절대적 사랑 본문
♬OST: 김광민 - 작은 배
1.
“나 왜 사랑해?”
전기장판을 틀면서 내가 물었다. “음...널 사랑하는데 이유가 어딨어.” 그녀가 대답했다. 이번엔 그녀가 질문했다. “넌 날 왜 사랑하는데? ”
2.
누군가 ‘자신을 왜 사랑하냐’고 물을 때,
대부분은 잠깐 당황한다. 당황한 사람은 청문회의 어벙한 장관 후보자처럼 어눌하게 뜸을 들이고, 물었던 사람의 눈동자는 어서 말해 보라며 무언(無言). 답할 사람은 클리셰(Cliché)를 사용할지, 독특한 답을 할지, 거짓의 성벽으로 사랑의 땅을 보호할지, 지금 생각한 답이 뒷감당을 할 수 있을지를 계산하고, 의문만 키우는 신중한 침묵이 너무 길지 않을까 걱정한다. 침묵은 배신이니까.
3.
순간 수 많은 선택지들이 눈 앞에 보인다.
“인간성이 참 마음에 들어.”, “옷을 잘 입어서”, “매너가 좋아서”, “엄마와 언니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친구한테 자랑하려고.”, “만나 본 사람 중에 가장 가슴이 커서”, “돈이 많아서”, “노래를 잘 해서.” “그 무리 중에서 가장 괜찮아서”, “피부가 하얘서”, “몸이 멋있어서”, “잘생겨서”, “예뻐서.”, “너 허벅지가 튼실하잖아”, “너 존나 웃기잖아, 개그맨보다 웃겨”
솔직하고 타당한 이유들.
그 중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예뻐서’, ‘잘생겨서’가 정답 비슷한 걸까? 모르겠다. 이 답 또한 불완전한 승리감만 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의 모든 선택지들도 사랑하는 사람이 듣기에 어딘가 부족해보인다. 왜? 저 말들이 상대의 입 밖으로 나온다면, 듣는 사람의 마음 한 구석에 알 수 없는 서운함과 공허함이 생기니까. 어쩌면 이 불행한 현상은 우리가 피하지 못하는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티비와 핸드폰만 봐도 상대가 말했던 ‘그 이유’를 가지고 있는 ‘더’ 잘난 사람들이 –안 보고 싶어도- 보이고, 대도시의 지하철만 뒤져도 자신을 대체할 사람이 수두룩하다는 걸 은밀하게 느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시간이 자신의 껍데기를 바꿔놓으면 어쩔 텐가? 사랑의 이유가 내 껍데기라면 껍데기가 변하거나 쭈글쭈글해지면 사랑은 끝난다. 그래서 다른 존재로 대체 가능하고 변하는 껍데기를 가진 존재는 절망할 수 밖에.
4.
나도, 너도, 우리 누구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대체될 수 있는 사람’, ‘이제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우리 모두 흔들리지 않는 사랑을 받고 싶다. 흔들리지 않는 사랑? 내가 흔들리지 않는 사랑을 받았던 적이 있었나? 음,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내가 받았던 흔들리지 않은 사랑 중에는 ‘탯줄과 태반’을 꼽을 수 있겠다. 아, 따뜻했지 그 미끄덩한 탯줄로 이어진 사랑은.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손을 가슴에 포개고 가만히 있어도 태반이 준 밥과 따뜻함을 기억한다. 선물이었다. 조건 없는 선물, 조건 없는 YES. 내가 어떤 모습을 하건 내가 무엇에 실패했고 내가 어떻게 생겼든 상관없이, 심지어 내가 노폐물만 줘도, 심지어 패륜적인 발차기마저 받아준 한계를 모르던 다정함이었다. 물 속에서 내가 쥔 권리이자 의무는 안전과 평화, 성장뿐이었고 나는 그림처럼 흔들림 없는 얼굴로 탈출 명령을 기다릴 뿐이었다.
오, 힌트를 얻었다.
그래, 답해야 할 사람은 ‘탯줄과 태반’이 되어야한다. ‘상대적인’ 답을 치워버리고 ‘절대적인’ 답을 해야한다. 거짓 보다 더 나쁜 순진한 대답이 사랑하는 사람 마음에 상처를 내기 전에 ‘조건없음(이유없음)’이라는 대답해야한다. 이유는 없고 ‘너 존재 자체’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식으로, 네가 어떤 사람이든 사랑하겠다는 식으로 말해야한다. 어머니와 태아 사이에 놓인 ‘탯줄과 태반’이 말하는 것처럼.
5.
“나 왜 사랑해?” 전기장판을 틀면서 내가 물었다.
“음... 널 사랑하는데 이유가 어딨어. 그냥 너라서 사랑하지” 그녀가 대답했다.
이번엔 그녀가 질문했다. “넌 날 왜 사랑하는데? ”
“나도 이유없어. 그냥 너라는 존재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지.”
그녀도, 나도 ‘탯줄과 태반’처럼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똑같은 대답 금지야.”
“어?” 내 이마에서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다.
by. 얼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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