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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상견례

우리도 씁니다 2021. 8. 1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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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생활은 세금 같았다고 한다.

기쁜 일 뒤에 오는 골칫덩어리였으니까. 행복은 딱 상상에서 멈췄다. 결혼‘생활’은 지금 가정이 결함 있는 인격체끼리 만나 이룬 것임을, 결혼생활에 재능이 없는 사람끼리 만난 것임을 깨닫게 해줬다고 한다. 그러다 딱 하나의 치명적인 사건으로 인해 그녀는 이 결혼생활이 ‘세금’이 아니라 ‘잘못 산 복권’ 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정떼기’ 경쟁에 돌입했다. 그리고 두 가지 선택지가 그녀 앞에 놓였다. 하나는 견디는 것. 다른 하나는 끝내는 것. 전자는 기혼, 후자는 이혼이었다. 그녀는 후자를 선택했다.

 

그녀는 바로 법원으로 돌진했고,

서류와 때려치우고 싶은 충동을 함께 움켜쥔 채 빠르게, 배짱 있게 절차를 돌파했다. 그리고 끝. 끝났다.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 식장에서 시작된 게 법원에서 끝나버렸다. 기쁨 속에 슬픔이 섞여있던 결혼식장과 달리 법원은 슬픔 속에 기쁨이 섞여 있는 곳이었다. 족보가 업데이트되자 그녀는 뒤늦게 놀랬다. 내 인생에 이혼이라니! 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어긋나도 너무 많이 어긋났음을 느꼈고 자신에게 연민을 느꼈으며 천하의 못된 년이 된 것처럼 위축됐다.

 

하지만, 어찌 됐든, 누가 뭐라 하든,

그녀는 해방됐다. 적자 상태로 시작되는 아침의 기분이여, 분노가 터져 나오는 저녁이여, 이제 안녕! 고맙게도 이혼을 지지해 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한 말은 일리가 있었다. 도망쳐야 하는데 여권이 없는 것보다 낫다고. 끝나는 것보다 끝낼 수 없는 결혼이 더 절망적이라는 말이었다.

 

시간은 흘렀다.

썩어 문드러지고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구원한 지 몇 개월이 지났다. 시대가 아무리 좋아졌어도, 이혼은 잔인한 일이었다. 이혼이 타투처럼 남았고 자신감을 회복하고 극복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다시 혼자가 된 게 괴롭진 않았지만 길거리의 부부들을 볼 때면 조금 울적해졌다. 선택의 결과는 그녀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직장 동료와 친척 몇 명은 결국 그녀의 이혼 소식을 알게 되었고 몇몇은 그녀 등 뒤에 있는 ‘이혼녀’라는 음울한 위엄을 두려워했고, 몇몇은 그녀가 없는 자리에서 수군댔다. 한편, 그녀의 부모는 본가로 돌아온, 그냥 돌아온 것도 아니고 부모의 흥을 깨는 최악의 사건을 가지고 온 딸내미를 착잡하게 쳐다봤다. 하지만 이혼에 벌벌 떨던 집안 꼰대들의 우려와 달리 그녀도, 집안의 누구도 그녀의 이혼 때문에 망가지지 않았다.

 

그녀는 은둔하지 않았다.

씩씩하게 요가와 헬스에 몰두했고 본가로 돌아올 때 신혼집에서 가져온 청소기, 선풍기, 서랍장도 잘 썼다. 폼 났던 결혼식, 가정의 과제들, 같이 쓰던 접시와 조리 기구들은 점점 잊혔다. ‘아 슬프다!’라고 적혀 있던 전 남편의 카톡 프로필 메시지도 사라진지 오래였다. 자신이 하자품이 된 느낌도 예전보다 덜 했다. 하자품? 그럴리가!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즈음 그녀는 군대에서 짱박혀있던 나에게 카톡으로 “누나 이혼했다. 핸드폰에 저장된 이름 지워라.”라고 뒤늦게 소식을 알렸다. 나는 당황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하지만 왜냐고 묻지 않았다.

 

두 남매는 흩어졌다가

제대와 이혼이라는 인생의 분기점으로 본가에 다시 모여 살게 됐다. 그녀는 이혼이 주는 절망과 기쁨, 그리고 이혼이 가진 상실과 이로움에 대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나도 묻지 않았다. 마치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누나와 같이 밥을 시켜 먹고 같이 티비를 보니, 옛날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교복 입은 내가 신발장에 도착하면 누나들이 집에 있던 풍경으로. 함께 인기가요에서 비, 동방신기, 원더걸스를 보던 시절로.

 

그녀는

영화나 보자고 혹은 나가서 치맥이나 하자고 자주 나를 꼬드겼지만, 나는 매번 거절했다. 이럴 때일수록 밖으로 나가 새로운 인연을 만나야 한다는, 속 깊은 뜻으로? 아니, 오히려 이혼이 주는 적적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공감능력이 결여된, 방에서 책만 읽는 어린놈이었을 뿐이다. 외로움? 그게 뭔데? 나는 그런 식이었다. 시간이 더 지나자 어느 날부턴가 부엌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그녀의 방에서 통화하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중간중간 ‘오빠’소리도 들렸다. 나에게 숨겨둔 형이 있었나? 그리고 그녀가 달달한 향수를 뿌리고 외출하는 날도 잦아졌다. 그때부터 그녀는 나에게 영화를 보자는 말도, 맥주 마시자는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 해 겨울,

그녀는 소개해 줄 사람이 있다며 나와 어머니를 초대해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고급 한식당에서 처음 본 남자는 몸이 단단해 보이는, 운동선수 같은 사람이었는데 겉옷을 벗는 것부터 옷걸이에 옷을 거는 것, 물을 마시는 것까지 모든 게 어색했다. 언어 없는 공포를 아시려나? 짧은 대화 중간중간에 소리가 멈추고 시간이 녹은 듯 얼어붙은 순간이 계속됐다. 그녀와 남자, 둘은 종이처럼 하얀 셔츠를 입었고, 둘만 남매처럼, 비밀처럼, 서로의 귀에 대고 자주 속삭였다. 어머니는 차라리 적막을 깨는 웨이터가 반가워서 괜히 웨이터에게 농담을 건넸다. 나는 조용해질 때마다 창밖을 봤다. 버스와 자동차들이 소리 없이 지나갔다.

 

다행히 식사가 우리를 구원했다.

기다리던 음식이 나오자 우리는 소풍처럼 먹었고 모든 게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서로 음식을 건네고, 빈 그릇이 쌓이고, 구겨진 냅킨이 뒹굴었다. 우리는 첫 만남에 대해, 그가 살고 있는 거리, 취미, 일에 대해 대화했다. 남자는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그녀와 같은 경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 경력은 ‘같은 상처’라고 표현됐다.

 

식사가 마무리될 때 쯤,

그녀와 남자는 각자에게 중고의 표현이 돼버린 ‘결혼’이란 단어를 꺼냈다. 어머니는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쳤다. 내 앞에 있는 남자를 ‘매형’이라고 부르라는-식당에 도착하기 전에 우리가 모의하고 합의한 내용인- 신호였다. 신호를 받은 나는, 나에게도 이미 중고가 돼버린, ‘매형’이란 단어를 입 밖으로 꺼냈다. 그러자 남자가 말했다. “잘 살겠습니다.” 커피가 나올 때쯤 그녀는 조용히 영양제 통을 꺼내 손바닥에 대고 탈탈 털고서는 알약을 하나를 삼켰다. “뭐야?” 내가 물었다. “아연이야” 모두가 배불렀다. 우린 다음의 약속을 정하고 끙 소리를 내며 일어섰고 각자의 옷을 입고 각자의 길을 향해 떠났다. 두 번째 상견례였다.

 

 

 

 

by. 얼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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