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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야

무능이 아니라

우리도 씁니다 2021. 8. 2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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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사칙연산을 포함한 단순 계산을 시작으로, 고등학교 수학 과정을 거치며 어떤 공식이나 결과(수학적 정리)에 대한 증명을 마주하며 수학에 매력을 느껴왔다. 처음에는 그 과정 역시 시험이라는 틀 안에서 외워야 할 글과 수식의 나열에 불과했을지 몰라도, 이해하면서부터는 비슷한 모든 문제들이 도미노처럼 내 앞에서 굴복하듯 무너지기 시작하며 희열과 자신감을 생산해냈다. 그리고 고등학교 수학을 벗어난 수학의 ‘역사’와 그 사이에 생겨난 문제들을 마주했고 수학의 또 다른 방향을 알 수 있었다.

 

답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예를 들면 2차 방정식에는 ‘근의 공식’이 존재하지만, 5차 이상의 방정식에서는 근을 찾는 공식이 없고, 이는 증명된 사실이다. 또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그렇다. 굉장히 간단한 수식이지만, 300년 만에 증명된 사실은 그 방정식을 만족시키는 어떤 자연수도 없다는 것이다.

 

결국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게 문제이자 결론이 되고, 말 그대로 답이 된다는 것인데, 그래서 어렵고 그래서 아름답게 느껴진다.(물론 공감하기 쉽지 않겠지만······.) 과학도 비슷하지만 가설에 맞춰 통계적으로 결론을 도출해내는 과정이 포함되기에 비교적 불완전하고, 다른 학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그런 이유로 수학은 사실상 철학에 가깝다.) 때문에 수학 이외의 영역에서 같은 위상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2.

마스크를 끼고 극장 상영관에 입장하기까지 방역을 위해 ‘QR코드’나 ‘손 소독제’를 철저히 하는 건 분명 익숙하지만 귀찮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쏟아지는 신작 대신, 재개봉한 고전을 극장에서 보는 것은 장점이다. 물론 이 역시 코로나의 여파이지만, 전적으로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렇다. 그리고 재개봉한 팀 버튼 감독의 작품인 <빅 피쉬>를 드디어 스크린으로 보게 되었다. 한 남자의 이야기가 액자 구조 속에서 판타지처럼 그려지는 방식과 그의 아들의 시점에서 보는 현재.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쯤에 거의 오열에 가까운 상태에 놓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수십 장의 종이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은 스포나 리뷰를 위한 글이 아니다. 대신 감정과 함께 느낀 수많은 생각 중 하나는 이렇다.

 

우리가 부모라 부르는 이들의 사랑은 늘 당연하게 느껴져 왔고, 그렇다고 배운다. 기본적으로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 못한 우리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런 무조건적인 관심과 사랑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이유가 뭘까. 인류의 역사가 그래 왔기 때문에, 또는 죽음을 맞는 생물의 욕구 중 하나는 종족 번식이기 때문이라고 누군가는 말하겠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그 본능적인 욕구를 뛰어넘는 듯한 것들을 내 짧은 역사에서도 목격해왔다. 그러나 얕은 내 식견으로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리고 영화관을 나오며 든 생각은 그게 바로 결론이고 정답이라는 것이다. 나는 아직 알 수 없다. 아무리 이런저런 가설을 가져와 그간의 추억과 감정을 대입해도 그 넘치는 사랑의 이유를 알 수 없다. 적어도 나를 만든 당신의 입장이 돼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게 정답이고 해답이다. 그래서 그 무지(無知)는 무능(無能)이 아닐지도 모른다

 

3.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인정하는 것이 수학의 아름다움 중 하나인 것처럼, 그들이 가진 무조건적인 사랑의 이유를 명확하게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 역시 본질적인 아름다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그 아름다움의 원인을 조금씩 알게 되는 순간부터 어떤 신세계가 펼쳐질지, 전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영화 <픽 피쉬>

 

 

by. 환야

 

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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