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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씁니다
압구정으로 영화를 보러 갔다. 집에서 약 1시간 정도 걸리는 곳으로 영화를 보러 간 이유는 영화가 끝나고 약 2시간 정도 진행되는 평론가의 해설 때문이다. 주말이었고, 영화 시간과 비슷한 2시간 동안 해설을 진행한다고 했을 때 생각나는 평론가가 있다면 이 글이 좀 더 흥미로울 수도 있겠다.(참고로 이 평론가의 제일 길었던 해설 시간은 약 5시간으로 알고 있다.) 심오한 영화라기보다는 오히려 너무 단순한(것처럼 보이는) 작품이었다. 병에 걸린 소녀가 등장하고, 성실과는 거리가 먼 남자에게 첫눈에 반한 뒤, 삶이 끝나기 전까지 사랑하는, 뭐 그런 내용이다. 제목을 말하지 않는다면 이 영화를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이다.(그날 나와 같은 공간에서 해설을 들은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만큼 어디서 분명 본 것 ..
QUIZ { 계급과 ■■ } 0. 계급을 보여주는 것은 사람이 지니고 있는 물건과 말이라고 생각했다. 예컨대, 프리미엄 아파트, 눈물만 한 다이아, 웬만한 월급을 삼킨 지갑, 꾸준한 기부가 찍혀있는 통장, 싸구려 액세서리, 텅 빈 통장, 명함, 갤러리에 대한 허영, 골프채 브랜드에 대한 상식, 돈에 대한 유머감각. 이런 것들이 계급 상징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래서 모든 사회인을 빨가 벗기고 그들의 입을 다물게만 할 수 있다면, 신생아와 원숭이처럼 모두 똑같아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음, 몸이 계급을 나타낼 수 있다는 생각?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는데 이제는 인정한다. 이제는 시간이 ■■에 계급의 흔적을 남긴다는 걸 안다. 망가진 ■■은 ‘경제적 취약함’이다. 그 이유는 시간이 흐르면 ■■이 하나, 둘 ..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수업시간이 지하철 왕복 시간과 거의 같았기에, 그 무기력함을 달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지하철 출구를 빠져나오자마자 보이는 제과점이 눈에 들어왔고, 혹시 질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로 최소한의 구매 기간을 정해둔 빵 종류 하나가 생각나 구매하기로 했다.(프랜차이즈 제과점이고, 어떤 빵인지는 비밀이다.) 대부분의 제과점이 그렇듯, 그곳도 전날 남은 빵들을 할인(20%)해서 판매한다. 그리고 그 할인된 녀석들을 모아놓는 선반은 어느 제과점이든 간에 매장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이 매장은 다행히(?) 선반을 매장 밖이 아닌 내부에 위치시켜 놓았지만, 입구 바로 옆이었기에 창을 통해 지나가는 외부 사람들과 아이컨택을 하며 고를 수 있는, 다소 부담스러운 위치이긴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대부분..
가시 돋친 존댓말이 오갔다. 나는 팀 발표의 Q&A 시간에 자주 질문을 한다. 그날도 발표에서 미흡한 점을 지적하며, 근거로 삼은 표에 대해 질문했다. 발표자는 붉어진 얼굴로 대답했지만 부족했다. 나는 다시 질문했다. 강의실 안 80명을 침묵시킨 나의 질문을 교수가 중단시켰다. 교수는 다음 발표로 넘어가기 전 쉬는 시간을 줬다. 쉬는 시간에 방어 기제가 작동했다.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이상한 것은 내 질문을 공격으로 받아들인 발표자였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다른 일을 하다가도 화가 난 발표자의 얼굴과 목소리가 자꾸 떠올랐다. 일주일이 지나 발표가 있었던 수업이 다시 돌아왔다. 아무렇지 않은 척 강의실로 들어가서 수업 준비를 했다. 친구 한 명이 내게 다가와 오늘 자신의 발표 때는 질문하지..
3년 전, 저녁으로 산 밥버거를 들고 다시 학교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예매해둔 영화 시간이 3시간 정도 남아 있었고, 저녁과 과제를 대충 끝낸 뒤 출발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후문 앞에서 한 잔 하러 가는 동기 둘을 마주쳤다. 그날이 마지막 상영이었던 영화였기에, 내가 들고 있던 밥버거도 안주로 하자는 제안을 두 번 거절했지만 결국 함께 근처 포차로 향했다. 당연히 술도 마셨다. 그날 그 두 사람의 목적은 기분 좋게 취하는 것뿐 아닌, 나로 하여금 영화를 취소하게 만드는 것 역시 포함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계획해 놓은 관람 예정 리스트에 구멍을 내는 것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던 시기라, 술을 먹고 보러 가라던 그들의 말을 기억하며 관람의 의지가 증발하는 것을 막았고, 먹은 만큼의 돈에 몇 천원 더 보..
한양대역에서 2호선을 타고 건대 방향으로 향하면 곧장 땅 위로 올라온다. 내가 타고 있는 이 기계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지하철? 전철? 기차? 지하철이라고 하자니 땅 위로 나오는 시간이 분명 있고 전철은 구한말을 위한 단어로 남겨둬야 할 것 같다. 기차는 남한 땅 정도 되는 넓은 땅을 다녀야 하지, 수도권으로 만족할 수 없다. ‘그나마 전철이 제일 나으려나.’ 생각하던 차에 잠실을 지나며 다시 땅 밑으로 내려왔다. 지하철?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하며 서울에서 생활한지 벌써 5년이 지났다. 이제 스스로를 서울 사람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1년 중 대부분의 시간을 서울에서 보낸다. 고향인 포항에 내려가면 친구도 몇 안 남아 있고 할 일도 없다. 그런데 여전히 그곳에 계신 내 부모님, 우연히 경상도 ..
그 영화관은 광화문에 있다. ‘광화문에 있는 영화관’이라 했을 때, 두세 곳이 생각나는 누군가에게, 이어지는 내용은 설명이 아닌 공감이리라. 오늘도 200명은 넘지 않았지만(이 글을 쓴 것은 9월이다.), 세 단계로 나뉜 경고에서 2.5라는 숫자가 가진 힘은, 다수가 개인의 문제를 지적하기 이전에 개인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기에 충분했고, 결국 오늘도 예매를 취소했다. 게다가 영화 상영이 끝난 뒤 관객과 감독의 대화가 이어지는 자리라는 사실과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될 날씨에 광화문이라는 빌딩 숲 사이를 오랜만에 걸을 것이라는 기대 덕분에, 로그인부터 취소 버튼까지의 여정은 분명 꽃길이 아니었다. 그 영화는 일본 ‘후쿠오카’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내용이다. 매번 ‘다양성 영화’라는 목록에 들어가는 작품을 연출..
1. 책을 좋아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성인이 된 후, 그러니까 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그리고 제대로 책 한 권을 완독했다. 교복을 입었을 땐 뭐 했냐고? 독후감은 인터넷에서 긁어와서 완성했고 점심시간에 책을 읽는 사람이 ‘쿨’ 하지 못하다 생각했다. 그리고 당연히 책은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컴퓨터가 고장이 났다. 남은 건 핸드폰 뿐이었고 기사를 보다가 영화 평론가가 추천해 주는 책에 대한 글을 봤다. 천명관의 「고래」, 정유정의 「7년의 밤」 이었다. 뭐라더라, ‘2000년대에 나온 가장 재밌는 소설’ 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다음 날 도서관으로 갔다. 처음으로 회원카드를 만들고 앞의 두 책과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를 빌렸다. 어땠냐고? 새벽까지 다리를 덜덜 떨면서, 감..
작년부터 자주 들어오던 노래가 있다. 물론 그런 곡이 한두 개가 아니지만, 발매된 지 약 1년 하고 2개월이 지나고도 아직 익숙함이라는 요소가 질림에 굴복하지 않았음에 가끔 놀라긴 한다. 곡 제목을 말하기에 앞서, 일부의 개인 취향을 드러내는 것은 맞지만, 영업의 목적은 아니란 것을 밝힌다. ‘볼빨간 사춘기’의 ‘워커홀릭’이라는 곡인데, 뭐 그렇게 취향을 타는 가수는 아닐 것이다. 영업이 필요한 가수도 아니다. 팬을 자처하는 많은 이들을 보아왔기도 하고, 대부분 공감하는 장점을 갖는 가수이다. 그리고 여전히 이 곡은 내 MP3 플레이리스트 속 ‘신곡’ 목록에 1년 이상 자리하고 있는 곡들 중 하나이다. 그런데 오늘 집으로 오던 중 듣게 된 이 노래가 작년의 그 느낌과는 좀 다르단 것을 느꼈다. 질렸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