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환야 (34)
우리도 씁니다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수업시간이 지하철 왕복 시간과 거의 같았기에, 그 무기력함을 달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지하철 출구를 빠져나오자마자 보이는 제과점이 눈에 들어왔고, 혹시 질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로 최소한의 구매 기간을 정해둔 빵 종류 하나가 생각나 구매하기로 했다.(프랜차이즈 제과점이고, 어떤 빵인지는 비밀이다.) 대부분의 제과점이 그렇듯, 그곳도 전날 남은 빵들을 할인(20%)해서 판매한다. 그리고 그 할인된 녀석들을 모아놓는 선반은 어느 제과점이든 간에 매장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이 매장은 다행히(?) 선반을 매장 밖이 아닌 내부에 위치시켜 놓았지만, 입구 바로 옆이었기에 창을 통해 지나가는 외부 사람들과 아이컨택을 하며 고를 수 있는, 다소 부담스러운 위치이긴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대부분..
3년 전, 저녁으로 산 밥버거를 들고 다시 학교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예매해둔 영화 시간이 3시간 정도 남아 있었고, 저녁과 과제를 대충 끝낸 뒤 출발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후문 앞에서 한 잔 하러 가는 동기 둘을 마주쳤다. 그날이 마지막 상영이었던 영화였기에, 내가 들고 있던 밥버거도 안주로 하자는 제안을 두 번 거절했지만 결국 함께 근처 포차로 향했다. 당연히 술도 마셨다. 그날 그 두 사람의 목적은 기분 좋게 취하는 것뿐 아닌, 나로 하여금 영화를 취소하게 만드는 것 역시 포함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계획해 놓은 관람 예정 리스트에 구멍을 내는 것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던 시기라, 술을 먹고 보러 가라던 그들의 말을 기억하며 관람의 의지가 증발하는 것을 막았고, 먹은 만큼의 돈에 몇 천원 더 보..
그 영화관은 광화문에 있다. ‘광화문에 있는 영화관’이라 했을 때, 두세 곳이 생각나는 누군가에게, 이어지는 내용은 설명이 아닌 공감이리라. 오늘도 200명은 넘지 않았지만(이 글을 쓴 것은 9월이다.), 세 단계로 나뉜 경고에서 2.5라는 숫자가 가진 힘은, 다수가 개인의 문제를 지적하기 이전에 개인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기에 충분했고, 결국 오늘도 예매를 취소했다. 게다가 영화 상영이 끝난 뒤 관객과 감독의 대화가 이어지는 자리라는 사실과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될 날씨에 광화문이라는 빌딩 숲 사이를 오랜만에 걸을 것이라는 기대 덕분에, 로그인부터 취소 버튼까지의 여정은 분명 꽃길이 아니었다. 그 영화는 일본 ‘후쿠오카’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내용이다. 매번 ‘다양성 영화’라는 목록에 들어가는 작품을 연출..
작년부터 자주 들어오던 노래가 있다. 물론 그런 곡이 한두 개가 아니지만, 발매된 지 약 1년 하고 2개월이 지나고도 아직 익숙함이라는 요소가 질림에 굴복하지 않았음에 가끔 놀라긴 한다. 곡 제목을 말하기에 앞서, 일부의 개인 취향을 드러내는 것은 맞지만, 영업의 목적은 아니란 것을 밝힌다. ‘볼빨간 사춘기’의 ‘워커홀릭’이라는 곡인데, 뭐 그렇게 취향을 타는 가수는 아닐 것이다. 영업이 필요한 가수도 아니다. 팬을 자처하는 많은 이들을 보아왔기도 하고, 대부분 공감하는 장점을 갖는 가수이다. 그리고 여전히 이 곡은 내 MP3 플레이리스트 속 ‘신곡’ 목록에 1년 이상 자리하고 있는 곡들 중 하나이다. 그런데 오늘 집으로 오던 중 듣게 된 이 노래가 작년의 그 느낌과는 좀 다르단 것을 느꼈다. 질렸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