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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우리도 씁니다 2021. 9. 29.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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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한문을 공부하면서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단어 중 하나가 바로 ‘다소(多少)’였다. 대소(大小), 장단(長短), 상하(上下), 좌우(左右) 등 단순히 상반되는 두 한자의 나열과 달리, ‘다소’의 활용 예시들은 부사였다. 아쉽게도 언어적 탐구 욕구가 수학과 같은 분야의 그것보다 작았기에, ‘다소’는 일상 속 언어 활용을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됐을 뿐이었다.

 

‘다소 어려울 수 있다.’ 몇 년 사이에 가장 눈에 띄고, 나 역시 자주 선택하는 표현이 되었다. 어떤 분야에 조금이라도 먼저 발을 집어넣은 이들의 말. 이때 ‘다소’는 ‘어느 정도’로 대체되곤 한다. 그리고 시작에 앞서 불안한 누군가는 “그래서 그 ‘어느 정도’가 어느 정도인데?”라고 재차 묻는다. 아직 전문가가 아닌 선발(先發)자는 모든 경우를 다 설명해야 하는 부담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가장 현명하게 답한 것일지도 모른다.

 

다소는 절대성을 가진 두 의미의 나열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많(多)을 수도 있고, 다른 이에게는 적(少)을 수도 있다는 일종의 사실 표현이다. 이는 수치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우리 주변의 거의 모든 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합리적인 표현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갈수록 우리는 너무 애매하다며 비교를 위한 하나의 기준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기준을 판단할 또 다른 기준을 요구한다. 그렇게 넘쳐나는 기준으로 인해 명확하길 바랐던 판단은 혼란에 빠져 수없이 많은 갈등으로 이어진다.

 

기준이란 것이 없어질 수는 없다. 다만 나의 기준으로 뭔가를 판단하는 것보다는, 뭔가를 시작한 뒤 내 기준을 돌아보는 것이 우리의 갈등을 줄이는 방법 중 하나이지 않을까. 또 한 번 질문하고 싶어졌다. 우리 사회의 혐오는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by. 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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