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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야

다시 희망 [TO 얼치기]

우리도 씁니다 2021. 9. 6.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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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이 늦었어. 4년 전부터 서로 많은 대화가 있어왔고, 그만큼 쓸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알맞은 내용을 고르느라 늦었다는, 이런 변명을 이해해줘. 그리고 생각을 정리하고 이야기해 볼 기회를 만들어줘서 고마워.

 

두괄식 표현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까지 가장 정답에 가깝다고 생각해온 게 있어. 우리가 처음 대화했을 때 언급한 ‘이동진’ 영화 평론가의 블로그에 장식된 말이기도 해. ‘하루하루 성실히,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계획적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후회와 동행하는 횟수를 줄여줬거든.

 

무작정 시작한 걷기가 탄력을 받아 달림으로 발전하는 게 좋았어. 하지만 어느 지점에서는 방향을 몰라 길을 잃고 그저 고생으로 끝나버려 후회로 남았던 게 사실이야. 그래서 잠시 멈추고 뒤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어. 우리가 처음 대화할 수 있었던, 그 식판을 닦던 순간처럼 말이지. 그 덕분에 지금 걷는 또 다른 길을 알게 된 것도 사실이니까. 그래서 ‘관성’이라는 단어가 늘 머릿속을 맴돌아. 시작한 것을 쉽게 멈추지 않는 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낳을 수 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후회를 남기기도 해. 반면에 멈춤은 방향을 재설정하는 기회가 되지만, 시작을 불허하며 하릴없이 시간만 낭비하는 꼴이 되기도 하지.

 

여덟 학기가 넘었던 학업의 스트레스가 사라진 지금이 썩 나쁘지 않아. 하지만 그만큼 하루의 시작이 늦고 그날의 판단이 느려진 것도 사실이야. 학생이란 신분은 한계를 느끼게 만드는 벽이 되기도 하지만, 주변의 부담감으로부터 지켜주는 울타리가 될 수 있었어. 그런데  그 경계를 벗어나니 무지개를 좇을 수 있는 희망이 느껴지는 동시에 절대 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변하기도 해.

 

결국 모든 것이 희망이자 절망이라는 생각이 매일 파도처럼 밀려와. 그리고 세상에 만연한 이 ‘이중성’ 앞에서 점점 나약하지는 것 같아. 네가 물어본 지금의 ‘딜레마’가 바로 이거라는 생각이 아닐까. 그렇게 자꾸만 고민에 빠져 어디로 가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무기력해지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해. 문득 영화 <곡성>의 주인공이 떠오르네. 그런데 이중성을 느낀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일지도 모르겠어. 어떤 요소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느끼는 건 그만큼 우리가 많은 경험을 해봤기 때문이고, 덕분에 이중성은 합리성이라는 단어로 대체할 수 있으니까.

 

예술은 자신의 것은 잃어가는 헌신인 동시에 마음을 채우는 것을 깨닫는 것 같다고 했지? 그런 다층적인 생각을 마주하고 글로 옮겨서 답장을 기다리는 것 자체가 바로 우리가 합리적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하나의 방증이지 않을까. 그리고 일련의 깨달음이 우리의 무한한 대화로 이어져 온 걸 테고 말이야. 막연히 너무 희망적인 결론인가? 하지만 예술에 ‘낯설게 하기’라는 단계가 있듯이, 절망 역시 희망으로 볼 수 있는 낯선 시각이 존재할 거야. 언급한 <곡성>의 결론인 ‘무기력한 절망’은 작품성을 포함한 하나의 희망이 됐듯 말이야.

 

이 부분을 쓰는 지금, 창밖에 비가 내리고 있어. 희망을 얘기하고 있어서인지 창에 부딪히는 물방울 하나하나가 희망의 예시들로 보여. 어떤 각본도 없는 지금, 밖으로 나가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면 썩 괜찮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을 거라는, 말도 안 돼 보이는 희망이 또 하나 생각났어.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기쁨처럼 말이야.

 

 

 

 

 

by. 환야

 

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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