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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비였으면 본문
그러니 말하자면 ‘우산 빌런’이다. 아, 좀 더 정확히는 ‘장(長)우산 빌런’이 맞겠다.
팔을 내리고 우산을, 그것도 장우산을 가로로 들고 다니는 이들. 물먹은 우산이 행여 ‘남에게 닿을까.’, ‘나에게 닿을까.’ 하고 일정한 거리를 두는데, 그 사이에서 굳이 또 우산을 가로로 들고 자신감 있게 팔을 휘젓는다. 올라가는 계단에서는 위험하기까지. 덕분에 탈 수 있던 열차 하나를 놓친 적도 있다.
‘왜 저럴까.’, 생기는 불가피한 의문. 이어진 가설, 혹시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위협을 가하려는 무의식에서 비롯된 행동일까. 썩 좋지 않은 그들의 모습과 내 기억들로 구축된 확증편향일지라도, 영역 확장의 욕망이라는 기반을 가지고 접근하기 시작했다.
장우산의 사용 빈도와 나이는 비례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활동 영역이 줄어들 수밖에 없으며 그 열정과 의지 그리고 기회가 사라지는 이들일수록 능력을 최대한 과시하고 싶은 게 그런 우산의 행태로 나타난다고 느껴졌다.
어쩌면 이것은 나이가 들수록 두드러지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하긴, ‘지금 뭔가 시작하면 늦은 거겠지’라고 생각할 시간에 일단 저지르고 보는 게 답인데도 주저하고 쓸데없이 자존감 부족한 자존심만 늘어가는 나를 보면, 안타까우면서도 답답해지는 게 사실이다. 마침내 며칠 전에도 했던 다짐으로 이어진다.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지하철을 빠져나왔다. 다행히 비가 그쳤다. 적당한 습기를 머금은 시원한 바람이 분다. 핸드폰 화면에 뜬 파란 네모가 맑은 공기를 대변한다. 그저 집으로 향하는 중이지만 문득 기분이 좋아졌다. 어라, 나는 지금 장우산을 가로로 들고 있다. 주위을 둘러본다. ‘아니야, 이건 주변에 사람이 없기 때문이야.’
고민, 가설이 좀 잘못된 것 같다. 몇 분 전처럼 갈고리처럼 된 손잡이를 잡고 세로로 들어보거나 팔목에 걸어본다. 우산 살을 잡고 세로로 들어본다. 그리고 다시 팔을 내려 가로로 들어본다. 답이 나왔다. 자존심이나 영역의 문제가 아니다. 이 자세가 가장 편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면 그들의 문제는 하나다. 가장 편하다 보니 타인에 대한 생각을 못(안) 한 것.
문득 나와 비슷한 나이를 가진 이들이 우산을 가로로 든 채 걸어가는 게 기억난다. 물론 오늘의 나도 포함되었다.
습기와 느려진 속도 때문에 짜증을 내고 싶은 거였을까. 겉으로 표현할 수는 없으니 자리 하나 없는 열차 안에 서서 원인 될 만한 것을 찾고 찾았다. 그렇게 우월하다고 착각한 나의 같잖은 이성적 판단이 ‘영역’이니 ‘자존감’이니 하는 단어를 토해내는 망상에 빠진 줄도 몰랐다. 문득 질문이 떠올랐다. 만연하다고 느껴진 이 시대의 ‘혐오’가 어디서부터 출발했을까. 이 산뜻한 바람이나, 평안한 귀갓길에서는 촉발될 수 없을 것들.
갈등이 필연적인 사회 안에서 편향된 가설은 하루에도 수없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해당 가설들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시간도 필요하다. 그러나 점점 그 시간이 줄어들고 있는 게 아닐까. 문제는 ‘우산’이 아니라, 몸에 달라붙는 습기나 옷을 젖게 하는 비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차라리 비였으면 좋겠다.
by. 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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