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씁니다

그 때의 마스크 본문

얼치기

그 때의 마스크

우리도 씁니다 2021. 8. 4. 14:32
728x90

그들이 나타나겠다고 

신고한 곳으로 가면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검은색 정강이 보호대를 꼭 찬다. 내가 첫 후임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떨어진 가을의 이파리들이 짓밟히고 으깨진 상태로 하수구를 틀어막았던 때, 그들이 나타날 강남터미널로 출동했다. 나에게는 두 번째 출동이었다. 터미널 어딘가에 버스를 주차했고 나와 동기는 내려서 선임들에게 정강이 보호대를 차는 교육을 받았다. 한 선임이 말했다. 과거에 장애인 시위자들의 자동 휠체어에 다리를 다친 대원이 있었기 때문에 정강이를 조심해야 한다고. 그리고 방패에 대한 교육도 받았다. 휠체어가 빠른 속도로 돌진할 땐 방패를 꼭 땅에 닿게 한 다음 45각도로 자신의 몸 쪽으로 기울이라는 것. 그 이유는 그들이 휠체어로 들이박을 경우 방패를 땅에 더 견고하게 딛기 위해서였다. 과연 물리학적으로 일리있어 보였다.

 

다른 한 선임이 말했다.

다른 대원과 말하면서 웃지말고, 특히 장애인들보고 절대 웃지말라고. 그들의 표정, 뒤틀린 몸, 불편해보이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 웃는다면 시위자들이 흥분할 것이고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웃음을 참을 자신이 없으면 마스크를 끼라고 말했다. “난 자신없으니까 낄거야, 너희들은 알아서 해라.” 선임은 이렇게 말하고 사라졌다. 나는 몇 초간 고민했다. 그러고는 흰 마스크를 주머니에 넣었다.

 

왜 그랬지?

그때 당시 나는 웃음을 참을 자신이 없었을까. 아니, 나는 지하철에서 틱 장애인이나 지체 장애인이나 휠체어를 전동차 문 앞에 주차한 사람이나 더러운 옷을 입은 사람이나 얼굴에 화상을 입은 사람이나 얼굴에 종기가 가득한 사람을 보고도 알아채지 못한 척, 움찔하지 않은 척 넘어가는 ‘척’하는 삶에 익숙했다. 그것이 교양있는 사람의 증거라고 생각했고 몸이 불편한 그들도 본인들이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조건은 웃음거리가 되면 안되니까. 그래서 혹 내 주변인이 몸이 불편한 사람을 조롱하고 비하하면 나는 마음 속 구조조정을 했다. 그 사람을 안 볼 생각으로 마음의 선을 그었다. 그렇다면 왜 나는 ‘척’하는 가면을 챙기지 않고 마스크를 챙겼나.

 

그때의 나를 생각해본다.

상상한 적도, 본적도 없는 광경 때문에 표정을 컨트롤하지 못할까 겁나서?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인생의 두 번째 출동이 주는 긴장감 때문? 그렇기도 하다. 선임을 무조건 따라하는 성실한 후임으로 보이고 싶어서? 그렇게 예쁨받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든, 그 느낌은 지금까지 남아있다. 마스크를 주머니에 넣는 순간 스쳤던 씁쓸함, 웃을 의도가 아니어도 마스크를 챙겼다는 미안함. 그래, 씁쓸하고 미안했다. 시위를 하는 그들은 절박했으니까. 누군가는 우연한 사건 하나로 소수자가 되었으니까, 그들은 누구를 웃기려고 태어난 것도, 누구를 웃기려고 시위를 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때의 그들도 생각해본다.

분명 법은 평등에 대해, 그들의 정당한 권리에 대해 말하고 그에 걸맞는 사회시스템을 구축하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법이 앞서간 건지, 현실이 느린건지 법과 현실은 앞 뒤가 맞지 않았고, 따로 갈라져서 떨어져있다. 다수자가, 언제든지 소수자가 될 수 있는 다수자가 은밀하게 소수자를 배제하고, 우습게 여긴 탓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법에 쓰여진 권리는 다수만 누리는 권리가 되었고 소수자들은 ‘권리를 얻기 위한 권리’부터 챙겨야 하는 존재가 된다. 누구나 그렇듯 자신의 존재가 위축될 때, 희미해질 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어하는 법이니, 그날 그들은 밖으로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마스크를 챙겼고. 부끄러운 사실이다.

 

 

 

 

by. 얼치기

 

 

얼치기

인스타 : @byhalves0009

 

우리도 씁니다.


인스타 @ussm._.nida


블로그 https://blog.naver.com/ussm2020

티스토리https://wewritetoo.tistory.com

 

'얼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해' 개혁하기  (0) 2021.08.31
두 번째 상견례  (1) 2021.08.17
참참참  (0) 2021.07.18
최선  (1) 2021.06.29
TO 규섭  (0) 2021.06.15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