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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겸

최후의 보루 콜라

우리도 씁니다 2021. 7. 29.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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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맛집 데려가 줄게!” 하연이 나를 당당히 데려간 곳은 맥도날드였다.

 “보통은 맥도날드를 맛집이라고 하지는 않아.”

 “맥도날드 맛있지 않아? 상하이 버거를 이길 수 있는 버거는 없지.”

 하연이 싱긋 웃었다. 하연은 입을 조금 움직이거나 눈을 조금 감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편하게 하는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쉽게 웃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잘 웃었다.

날이 추워질 무렵 대학교 동아리에서 그녀를 만났다. 처음 만난 날에 하연은 검정색 가디건을 입고 있었다. 하연은 눈에서 태어난 것처럼 피부가 하얬다. 검정색 가디건은 그녀의 하얀 얼굴을 더 하얗게 만들었다. 따뜻한 카페에 들어가면 금방 얼굴이 발갛게 익었다.

 검정색 커피가 빨대를 따라 작은 이빨을 넘어 하연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콜라 별로 안 좋아하나 봐?” 세트 메뉴에 포함된 콜라를 커피로 바꾸는 하연에게 물었다.

 “음, 안 먹어봤으니까 안 좋아한다고 말할 순 없어.”

 “콜라를 안 먹어 봤어? 태어나서 한 번도?”

 “응. 한 번도. 어렸을 때부터 입맛이 어른스러웠어. 패스트푸드도 별로 안 좋아했고, 추어탕이나 청국장 같이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을 더 좋아했어. 그러다 보니 탄산음료를 입에 대보지 않은 채 어른이 됐어. 어른이 되고 나서는 콜라를 안 마셔봤다는 게 뿌듯한 거야. 그래서 도전하는 마음으로 안 마시고 있어.”

 “사이다도 안 마셔? 환타는? 미린다는? 밀키스는?”

 “콜라만 안 마셔. 다른 것들은 가끔씩 마셔. 사실 탄산음료도 안 마시고 있었는데 실수로 한 번 마신 후부터는 그냥 마시고 있어. 콜라는 최후의 보루 같은 거야.”

 하연은 수박 화채를 먹다 실수로 사이다를 마셨다. 화채에는 요구르트가 섞여 있었기 때문에 먹어보지 않으면 사이다가 들어갔다는 것을 알기 어려웠다. 화채에서 수박을 하나 먹은 순간 수박에 묻은 사이다가 하연의 입을 때렸다. 그 날 이후로 하연은 탄산 음료를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하루도 하연과 콜라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콜라 없이 하연을 생각하기 어려웠고, 하연 없이 콜라를 생각하기 어려웠다. 최후의 보루 콜라. 이미 다른 보루들은 무너졌다. 사이다가 가장 먼저 무너졌고 그 후로 환타와 미린다가 무너졌다. 콜라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보루였다. 시간이 그녀에게 한 번만 더 공격을 퍼부으면 콜라는 반드시 무너진다. 콜라는 반드시 무너진다.

 “음료는 콜라 두 잔 준비해드리면 될까요?”

 “아니요. 한 잔은 사이다로 바꿔주세요.”

 하연과 맥도날드를 두 번째로 찾은 날이었고 하연을 세 번째로 만난 날이었다.

 “기억하고 있었네? 내가 콜라 안 먹는다고 했던 거.”

 하연의 질문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녀와 콜라를 매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이미 많이 안다고 느꼈고 그녀도 당연히 나를 많이 알 거라 여겼다. 하지만 그 날은 우리가 세 번째로 만난 날이었다.

 “그런 엄청난 것을 잊을 수는 없지.” 햄버거와 콜라가 올라간 쟁반을 들며 말했다.

 “그래? 나는 그렇게 엄청난 건지는 모르겠는데.”

 “아니, 엄청나. 그리고 상징적이야.”

 “상징적? 뭐를 상징하는데?”

 “비밀이야. 그리고 이걸 말해주는 것은 너에게도 좋지 않아.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너가 정해야 돼.”

 하연이 감자튀김을 쟁반 위에 쏟았다. 나는 하연의 감자튀김 위에 내 감자튀김을 쏟았다. 하연은 감자튀김을 하나 입에 넣고 꼭꼭 씹어서 삼켰다.

 “오빠가 하는 말은 너무 어려워. 돌멩이 같아.”

 “돌멩이? 무슨 뜻이야?”

 “그것도 오빠가 정하는 거야.”

 하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언제까지 먹고 있을 거야? 빨리 먹어.” 하연의 수업 시간까지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아서 우리는 서둘러 나와야 했다. 우리는 같이 캠퍼스를 걷다가 각자 수업을 위해 헤어졌다.

 

 시험과 과제 때문에 한동안 하연을 만나지 못했다. 해야 할 것들을 미루며 만날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햄버거를 먹고 난 후에도 나는 하연과 콜라를 자주 생각했다. 그래서 하연을 두 달이나 만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적잖이 놀랐다.

 하연을 만나지 않는 두 달 동안 나는 하연에게 내가 쓴 소설을 이메일로 보냈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니 한 번 읽어보라는 말과 함께. ‘문학이 뭐지?’ 수업 때 스캔해 두었던 PDF파일을 그대로 보내면서 내가 썼다는 말을 깜빡 잊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하연을 속이려 하지 않았다. 따져보면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다. 그 소설을 내가 쓰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이 썼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하연에게 그 소설을 보냈던 기억이 흐릿해질 쯤 답장이 왔다.

 “돌멩이 같아.”

 

 내가 하연을 다음에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시험과 과제 때문에 두 달 동안 만나지 않았지만, 시험과 과제가 끝나길 기다렸다 바로 만날 만한 사이는 아니었다.

 학교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포차 창가에 있는 하연을 봤다. 남자 두 명과 하연을 포함한 여자 두 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인사만 하고 지나갈 작정으로 하연이 보이는 창문을 두드렸다. 하연은 반갑게 인사했다.

 하연이 뭐라고 말을 했다. 하지만 창문과 주변 소음 때문에 들을 수 없었다. 하연의 눈이 반쯤 감겨 있었고 몸이 앞뒤로 흔들렸다. 하연이 취한 것 같아 나는 손을 흔들고 가려고 했다. 그러자 하연은 일어서서 흰색 패딩을 입고 포차 밖으로 나왔다.

 “술 많이 마셨어?” 내가 물었다. “응 오늘 조금 많이 마셨어. 마침 오빠가 지나가길래 나도 집에 가려고 나왔어.” 나는 하연이 두고 온 것은 없는지 확인하려 유리창 너머로 테이블을 살폈다. “너 어디 살아? 나는 이 근처에서 자취해.” 하연이 앉았던 자리에 투명한 잔을 발견했다. “그래? 나는 지하철 타야 하는데. 이왕 만난 김에 역까지 같이 가자.” 투명한 잔에는 콜라가 있었다. “그래. 같이 가자.” 잔에는 하연의 입술 색과 같은 립스틱 색이 묻어 있었다. 내가 조금만 일찍 왔으면 하연이가 콜라를 마시지 않았을텐데.

 “같이 있던 사람들은 누구야?” 역으로 걸어가며 하연에게 물었다.

 “누구?”

 “방금 같이 술 마시던 친구들.”

 “아아, 그냥 친구들.” 하연이 비틀거리며 말했다. 나는 하연의 팔꿈치 언저리를 잡고 부축했다.

 내일이 되면 말해줘야 할까. 그녀가 나 대신 마셔버린 콜라에 대해서 말해줘야 할 것 같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암을 발견한 의사처럼 무겁게 한 마디를 침묵 위에 올려야 할까. 서프라이즈! 스물세번째 생일날 정적을 깨는 폭죽처럼 말해야 할까.

 고민을 하는 사이에 역 앞에 도착했다. 하연은 눈을 감은 채 걷고 있었다. 역 앞에 도착하니 하연은 벤치에 주저앉아 버렸다. 하연의 신발끈이 풀려 있었다. 하연은 신발끈을 묶으려 손을 뻗었다가 그대로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괜찮아?” 새까만 머리카락에 대고 물었다.

 “하… 씨발.” 한숨 끝에 나지막히 욕이 묻어나왔다.

 아, 서프라이즈. 하연은 이미 알고 있다. 콜라는 진작에 무너져 있었다. 내가 봤던 무너질듯한 최후의 보루 콜라는 꿈이다. 콜라는 진작에 무너졌다는 것을 내가 알아 버렸으니 꿈 최후의 보루 콜라도 무너졌다. 내가 꿈 최후의 보루 콜라를 무너뜨렸다.

 그러니까 너가 그 날 엄청 취해서 벤치에 주저 앉아 버렸어. 얘를 어떡하나. 두고 갈까. 아, 아프니까 때리지는 말고 들어. 얘를 두고 갈까 고민하는데 너가 나지막하게 말하는 거야. ‘시발.’

 너무 억울하잖아. 가만히 집 잘 가던 나를 붙잡아다가 데려다 달라고 해서 데려다 주고 있었더니 난데없이 나한테 욕을 하니 억울하잖아. 아, 때리지 말라니까. 그래서 좀 놀려줘야겠다 싶었지. 핸드폰을 꺼내서 코카콜라 ASMR을 틀었어. 우선 병을 땄지. 뽕! 그러고는 얼음 잔에 따르는 거야. 콜콜콜콜. 탄산 튀는 소리도 들려. 치이이이이이. 그러고는 말했지. 와 하연아 콜라 잘 마시네! 꿀꺽꿀꺽.

 갑자기 너가 일어나더니 나를 보고 씨익 웃고는 지하철을 타러 가는 거야. 나는 얼빠져서 그냥 봤지. 너는 뒤도 안 돌아보고 지하철 역 계단으로 내려가더라. 야, 진짜 아파.

 “아니 오빠는 1년 전 얘기를 언제까지 할 거야.”

 “내가 볼 때, 너는 이미 콜라를 마셨어. 부끄러워 하지 마. 인생 그런 거다?”

 “됐어. 그냥 마셔.”

 

 

 

 

by. 김도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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