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씁니다

의경절벽 본문

얼치기

의경절벽

우리도 씁니다 2021. 5. 28. 23:30
728x90

1.

중대¹에 신병들이 도착했다.

훈련소 햇볕에 탄 피부가, 두피가 보일 정도로 짧은 머리가 눈에 띄었다. 그들은 잘생긴 건달들 같았다. 그때 마침 A가 이쪽으로 걸어왔다. A는 스페인어를 전공한 엘리트였고 나의 먼 후임이자, 우리 소대²의 막내였다. A는 나를 보자 인사하고 송곳니를 보이며 웃었다. 나는 A에게 턱짓으로 신병들을 가리켰다. A의 표정이 굳었다.

 

2.

신병은 부대의 흥분과 노동력의 대명사다.

물론 ‘우리’의 신병일 때만. 내가 가리켰던 신병들은 우리 소대가 아닌, 다른 소대 소속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신병들이 오지만, 우리 소대에‘만’ 신병이 오지 않을거라는 소식을 들은 건 전날 밤이었다. A는 낙담했다. A는 최장기간 막내였다. 사실, 몇 달째 막내가 없다는, 이 기록적인 불행은 예견된 일이었다. 의무경찰(의경)을 매년 감축해서 폐지하겠다는 말은 작년부터 돌았으니까. 폐지 이유? 출산율 감소, 그에 따른 현역병 부족, 의경들의 대체 가능한 특성과 공무원을 늘린다는 정책이었다. 그날 밤 A는 그래도 하필 자신이 막내일 때 이럴줄은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나’ 때를 이야기해볼까?

신병이 꼬박꼬박 월급처럼 들어왔었다. 예전에도, 앞으로도 있을 풍요처럼. 그 풍요는 상수(常數)이자 상식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신병들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결국 씨가 말라버렸다. 기형적인 현상이었다. 선임들은 경악했다. 처음있는 일이었으니까. A? 처음엔 A는 차분했다. 언젠가 막내에서 벗어나겠지, 라는 마음으로, A와 그의 동기들은 꾹 참고, 좀 처럼 일어나지 못하는 선임들을 성실히 ‘부양’했다. 하지만 두 달, 세 달이 지나도 신병이 오지 않자 그들은 점점 미쳐갔다. “힘들지?”라고 물으면 돌아오는 것은 늘 지친 웃음이었다.

 

막내들은 점점 특이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름은 ‘막내’였지만, 선임들과 친분이 많았고 인사는 90도에서 79도, 19도로 점점 올라갔으며, 많은 일을 능숙하게 처리했고 선임에게 갈굼과 동정을 동시에 받았다. 나는? 나와 내 선임들은 정말 힘든 시위는 우리가 다 했다는 억울함을 느끼면서도 풍요의 문이 닫히기 전에 입대했다는 사실에 비뚤어진 자부심을 느꼈다. 조금 더 솔직해볼까? 나는 누운채로 흐앙, 하품하면서 A와 A의 동기들이 땀 흘리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었다. 투자의 귀재가 타이밍 놓친(‘상투를 탄’) 투자자들을 보는 느낌이었다.

 

3.

당시 나는 책³ 하나를 떠올렸다.

초고령화 사회에 관한 책이었는데 내용은 거의 한국 종말론에 가까웠다. 여러분도 들어봤을 거다. ‘인구 절벽’. 한국의 ‘기록적인’ 출산율이 많은 것들을 무너뜨린다는 이야기. 책이 말한게 맞다면 사교육 시장, 초등교사의 일자리, 대학 경쟁률, 박사의 일자리, 이 모든 것들이 무너질 것이다. 그뿐인가? 의사와 변호사 같은 은퇴없는 직종의 노동시장은 포화상태에 들어갈 것이고, 젊은 사람들은 돈이 부족하고 내수시장은 축소되며 건물은 공실이 늘어나고, 기업은 해외로 이전할 것이고, 연금은 거덜날 것이며 해고가 쉬워질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저자의 진지한 경고가 나에게 호들갑처럼 보였던 게 사실이었다. 결국, 내가 저자의 경고를 ‘간접적으로’ 실감한 건 소대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와, 이거 야단났구나’할 때였다. 의경폐지의 시한폭탄이 제깍거릴 때는 몰랐지. 역시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다. 미래의 한국에선 수가 적은 젊은 세대는 투표로 윗 세대를 이길 수 없다는 저자의 주장은 소대 안에서 다수결을 할 때마다 수가 월등히 많은 윗 기수들이 여론을 주도하는 걸 보고 실감했다. 한국의 엘리트들은 한국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 거라는 저자의 예측? 막내들이 소대를 벗어나려고 선임 몰래 전출을 신청한 것을 보며 실감했다. T자형 혹은 역 피라미드 인구구조에서 젊은 세대가 부양을 책임질 거라는 주장? 이건 말할 것도 없었고.

 

4.

A가 겪는 고통은 특별했다.

부대 안에서 힘들다며 우는 소리를 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었지만, A의 고통은 내가 공감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날 취침 전 흡연장에서 A는 줄곧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있었다. 그의 독수리 로고가 박힌 티셔츠, 그의 털 난 다리, 그의 손에 들린 빗자루, 구부정한 허리. 그 모습이 무기력했고 숨막혀보였다. ‘생각하는 동상’을 로뎅이 만들었다면 A는 경찰청이 만든 ‘좌절하는 동상’이었다. 그리고 그가 작게 내뱉었던 “희망고문이야”라던 말, “차라리 죽여라”라던 말, “좆같다”라던 말, 그 모든 것이 마치 한국의 미래를 상징하는것 같았다.

 


¹ 군대 편성 단위의 하나. 소대의 위, 대대의 아래이다. 대개 4개 소대로 이루어진다.

² 군대 편성 단위의 하나. 분대(分隊)의 위, 중대(中隊)의 아래이다.

³ 조영태, 「정해진 미래」, 북스톤, 2016.

 

 

 

 

 

by. 얼치기

 

 

얼치기

인스타 : @byhalves0009

 

우리도 씁니다.


인스타 @ussm._.nida


블로그 https://blog.naver.com/ussm2020

티스토리https://wewritetoo.tistory.com

 

'얼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선  (1) 2021.06.29
TO 규섭  (0) 2021.06.15
To 환야  (0) 2021.05.14
집중하고 싶다  (0) 2021.05.03
절대적 사랑  (0) 2021.04.14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