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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겸

사랑은 착각이다

우리도 씁니다 2021. 4. 19.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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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1년 동안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말한다. 

“나 수진이를 좋아하지 않았던 거 같아.” 

“거짓말. 너 걔랑 처음 사귈 때 입이 귀에 걸려 있었어.” 

“그거 연기한 거야.” 

“지랄.” 

“적어도 나는 기억이 안 나. 사랑은 영원할 수 없나 봐. 처음에는 너가 말한 것처럼 정말 좋았을 수도 있어. 그런데 그게 깎이고 깎여서 결국에는 기억조차 안나.” 

친구는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터널 선샤인>에서 조엘은 사랑했던 연인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운다. 하지만 기억은 지워도 클레멘타인과 함께 했던 감정은 지울 수 없었다. 아니면 기억을 지우는 장치가 무의식까지 간섭하지는 못했거나. 어쨌든 조엘은 결국 클레멘타인을 잊지 못하고 다시 사랑을 고백한다. 

친구의 기억은 조엘과 다른 순서로 지워졌다. 조엘의 기억은 가장 좋지 않았던 사랑의 마지막부터 지워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친구의 기억은 오히려 가장 좋았던 사랑의 처음부터 지워졌다. 친구에게는 지루한 감정 정도만 남아있다. 

“사랑은 착각이야.” 

친구가 꼬인 혀로 말한다. 나는 친구를 데리고 술집을 나왔다. 

 

친구는 비관적인 사람이 되었다. 

“연애 뭐 좋은 거라고 하려고 하는 거야. 어차피 헤어질 거.” 

친구는 한 말을 잘 지켰다. 3년 동안 연애하지 않았다. 나는 3년 동안 여자친구가 다섯 번이 바뀌었다. 내가 연애를 시작할 때 친구는 부러워하지 않았다. 연애가 끝나 친구를 불러냈을 때도 항상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사랑은 착각이라니까.” 나를 위로한답시고 하는 말은 항상 같았다. 

 

그러다 친구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 

“어디서? 어떻게? 언제? 내가 아는 사람이야?” 

“아니 그게 설명하기 좀 복잡한데. 그냥 어쩌다 만났어.” 

친구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말했다. 친구의 눈이 자주 깜박였다. 

“짜증나. 꼴 뵈기 싫어.” 부끄러워 하는 친구에게 말했다. 

 

길을 걷다 우연히 친구와 마주쳤다. 친구는 한 여자와 손을 잡고 있었다. 

“여자친구야?” 

친구의 귀가 빨갛게 익었다. 

“안녕하세요.” 친구의 여자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혹시 식사 안 하셨으면 같이 하실래요? 제가 살게요.” 내가 말했다. 

친구와 여자친구는 서로 눈을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대화했다. 그러다 여자친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제안은 받아들여졌다. 

“둘이 어떻게 사귀게 됐는지 이야기 좀 해주세요. 얘는 도저히 이야기를 안 해요.” 

 

친구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여자친구를 만나게 됐다. 여자친구와 다른 남학생 A를 포함해 세 명이서 친해졌다. 하루는 일이 일찍 끝나서 함께 맥주를 마시러 들어갔다. 친구는 길을 걸을 때 여자친구에게 바짝 붙어서 걸었다. 여자친구는 친구가 자기에게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 그 때 너가 나한테 붙어서 걸은 거 아니야?” 친구가 여자친구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너가 나한테 얼마나 붙어서 걸었는데. 나는 너가 왜 이렇게 붙나 했어.” 

“알겠어. 계속해.” 

맥주 가게에 들어가서 여자친구는 A의 옆자리에 코트를 얹어 놓고는 바로 화장실에 갔다. 여자친구가 돌아왔을 때 여자친구의 코트 위에는 친구의 가방이 올라가 있었다. 여자친구는 친구가 자기에게 관심이 있다고 확신했다. 

“너가 내 옆에 앉으려고 A 옆에 코트를 둔 거 아니었어?” 

“무슨 소리야. 나는 너보다 A랑 훨씬 친하니까 A 옆에 앉으려고 했지.” 

“진짜? 나는 그 때 너가 나한테 관심있는 거라고 확신했는데?” 

 “나는 그 때 너한테 관심 없었어.” 

 “그러면 왜 그 날 밤에 메시지 보낸 거야? 다음에 둘이서 같이 놀자고 했잖아.” 

 “그 메시지는 너가 보냈잖아. 기억 안 나?” 

 친구는 메시지 기록을 뒤졌다. 그러고는 여자친구가 보낸 메시지를 찾아냈다. ‘우리 둘이 놀까?’ 친구는 의기양양해졌다. “너가 먼저 좋아했잖아.” 

 두 사람이 투닥거리는 동안 나는 500cc 맥주 두 잔을 마셨고 화장실에 갔다 왔다. 화장실에서 돌아올 때 둘의 뒷모습이 보였다. 둘은 귓속말을 주고 받고 있었다. 

 

 “자기는 내가 왜 좋아?” 

 “너가 나 좋아해서.” 

 “아 진짜? 나는 너가 나 좋아해서 좋아하는데.” 

 “지랄하네.” 내가 말했다. 

 “도겸아, 사랑은 착각이라니까.” 

 

 

 

 

 

by. 김도겸

 

김도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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