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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겸

사랑해와 귀납법

우리도 씁니다 2021. 4. 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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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추운 날이었다. 지나가는 대학생들의 대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어색한 밤이었다. 젖은 바닥을 긁으며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도 들렸다. 준비한 말이 나오려다 목에 걸려 대롱대롱 흔들렸다. 다음에 말할까? 아니다. 오늘은 말해야 한다. 저기 걸어오는 학생들이 지나가고 나면 이야기해야지. 저기 보이는 버스정류장을 지나면 이야기해야지. 해야지, 해야지.

 쑤욱. 내 팔 속으로 너의 팔이 들어왔다.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 나의 말이 나왔다. “우리 사귈래?”

 “그래.” 고개를 돌려 너를 보지는 못했지만 너는 소리 없이 웃었다.

 “오늘 그 말을 하려고 했어?” 너가 물었다.

 “아니. 다른 말을 하려고 했어.”

 “무슨 말을 하려고 했어?” 너가 다시 물었다.

 “나 너 좋아해.”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너를 봤지만 너가 고개를 숙여서 보지 못했다. 그래도 너는 이번에도 소리 없이 웃었다. 아무 말 없이 웃고만 있었다.

 “너는?” 내가 물었다.

 “나도 너 좋아해.”

 나는 너의 손을 잡았고 너는 손가락으로 갈고리를 만들어 내 손에 걸었다.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일주일 정도는 괜찮았다. 마음을 확인한지 얼마 안 됐으니까. 아무리 변덕이 심한 사람이라도 일주일 만에 질리거나 하지는 않겠지. 지금까지는 내일이 오면 너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줬다. 그런데 이전에 만난 사람들도 처음에는 그랬다. 내일이 오면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젠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내일이 왔고 나는 그들과 더는 연락조차 하고 있지 않다. 그래도 너와 그 사람들은 전혀 다른 우주이니까 그 사람들의 사례를 적용할 수는 없다. 너는 너만의 좌표에서 살아왔고 다른 사람, 다른 우주를 만나며 다른 가능성을 뒤로 하며 살아왔다. 그러니 너에게만 적용되는 법칙이 새로 필요하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거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정말 뜰까? 지금까지 내일이 왔는데 해가 뜨지 않은 경우는 발견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내일이 오면 해가 뜬다고 귀납적으로 추론했다. 다시 말해서, 사례에서 일반 법칙을 끄집어냈다. 그런데 귀납법은 오류가 없는 법칙인가?

 소크라테스의 변증법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이 꽤 괜찮은 논리인 이유는 이 논리들이 연역법이기 때문이다. 연역법은 이미 있는 법칙에서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끄집어 낸다. 새로운 발견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표현을 다르게 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오류가 생기기 쉽지 않다.

 하지만 귀납법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하는 흔한 착각은 전부 귀납적 추론에서 온다. 소주를 마실 때 참이슬, 처음처럼, 맛있는 참, 대선은 모두 초록색 병이다. 이 사례들에서 소주병은 초록색이라는 일반 법칙을 세운다. 그런데 진로는 파란색 병이고 한라산은 투명한 병이다. 요지는 이거다. 지금까지 관찰되지 않은 것일 뿐, 앞으로 반례가 나올 수도 있잖아? 지금까지는 너가 사랑한다고 하지 않은 날이 없었지만 나중에 그런 날이 올 수도 있잖아? 불안하다.

 카페에서 너를 만났다. 너의 표정이 어둡다. 이런. 우리 아직 한 달도 안 됐잖아. 내 걱정이 어느 정도 현실이 되고 있다.

 “무슨 일 있어?” 내가 묻는다. “표정이 안 좋아 보여.”

 “아니야. 잠깐 다른 생각하고 있었어.”

 “무슨 생각?”

 “그냥. 학교 일.”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너는 그 때부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쏟아낸다. 강의는 하지 않고 인생 이야기, 인간관계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교수님이 있다. 너가 교수님께 바라는 것은 인생 교훈이 아니라 경제학 수업이다. 인간관계와 관련이 전혀 없는 경제학 수업에서 왜 인간관계 이야기를 시작하는 거지? 가르치는 것도 없으면서 과제는 또 엄청 많다. 분명 시험도 어렵게 나오겠지.

 교수님 욕에서 시작한 수다는 지나가면서 본 강아지 이야기로 흘렀다가 강아지가 나오는 노래 이야기를 했다가 좋아하는 노래 이야기로까지 번졌다. 끝말잇기를 하는 것처럼. “아 그 얘기를 들으니까 생각나는데.”를 타고 다른 이야기 주제로 자유롭게 이동한다.

 

 이야기가 끝나고 카페가 문을 닫을 준비를 할 때 우리는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와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사실은 나 불안해. 너가 나를 정말 좋아하는지. 순간적인 감정으로 나랑 사귀기 시작한 거일까 불안해. 금방 나한테 질려버리는 거 아닐까 불안해. 우리 만나서 한 달도 안 됐는데 사귀기 시작했잖아?” 이 말은 나의 입이 아니라, 너의 입에서 나왔다. 내가 불안한 것과 같은 이유로 너도 불안해 하고 있었다.

 “매일 사랑한다고 말했잖아.” 이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말이 되지 않을 때에도 힘이 없는 귀납법은 말이 되었을 때 더 힘이 없다. “매일 사랑한다고 말할게.” 이렇게 말하려다 그만뒀다. 이 약속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증명하지 못하니까. 너를 그냥 안아주려다 그만뒀다. 내가 스킨십 때문에, 아주 쉽게 변하는 몸 때문에 너를 좋아한다고 생각할까봐.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의 마음을 귀납적으로 추론할 수 없듯이, 내 마음을 귀납적으로 보여줄 수 없겠지. 그냥 지금 내 마음을 말하는 것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겠지.

 

 나는. 너를, 니가. 진짜. 좋아.




 

 

by. 김도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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