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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 양은 양털 옷을 입는다 본문

김도겸

하양 양은 양털 옷을 입는다

우리도 씁니다 2021. 3. 10.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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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 키가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무심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유머러스하다. 그래서 과에서 인기가 많았다. 그런데 바로 그 무심한 성격 때문에자신을 향한 호감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호감을 표현하지도 못했다.

 나와 전은 옆에서 답답해하며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기도 했지만 박은 알아들은 체 하고는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번도 연애를 해보지 못 한 채로 두 학년을 다니고 박은 군대를 가버렸다. 그 뒤를 따라서 전과 내가 순서대로 입대했다.

 2010년 2월 내가 셋 중에 마지막으로 제대하고 캠퍼스를 찾았을 때, 박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전의 설명에 따르면 박은 제대하고 스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녀를 만났다. 둘은 리프트 아래에서 리프트 이용권을 검사했다.

10시간 가까이 서서 일을 하면 아무리 껴입어도 추웠다. 회사에서 지급한 핫팩 하나를 목에 댔다가 손에 쥐었다가를 반복하며 겨우 버티고 있었다. 하루는 박이 핫팩을 들고 오지 않아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추위는 천천히 파고 들었다. 처음에는 장갑을 뚫고 손끝을 차게 했고, 그 다음은 발끝이었다. 추위가 손과 발을 타고 심장에서 만나기까지는 한 시간이 채 안 걸렸다. 박의 몸은 직사각형으로 굳은 채 떨렸다.

 “같이 써요.” 그녀가 핫팩을 건넸다. 점심시간 전까지는 아직 네 시간이 남아 있었다. 처음에는 10분씩 번갈아 가며 핫팩을 손에 쥐었다가 8분, 5분으로 점점 시간이 짧아졌다. 11시 쯤에는 둘의 네 손이 핫팩 하나와 함께 포개졌다.

드디어 12시가 되어서 둘은 매점으로 뛰어 들어갔다. 박은 우동을 두 그릇 주문한 뒤 잊지 않고 핫팩을 샀다. 김이 펄펄 나는 우동에 박의 안경이 하얘졌다. 우동 한 젓가락에 추위는 이미 가셨다. 박은 고개를 들어 ‘하’ 하고 열기를 뱉고는 오물오물 씹어 면을 넘겼다. 하얘진 안경 너머로 박을 보고 있는 그녀의 실루엣이 보여서 박은 웃었다. 나중에 그녀에게 들은 바로는 박의 코에는 맑은 콧물이 매달려 있었고 이빨에는 김이 묻어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점심 시간이 끝나고 다시 리프트 이용권을 검사했다. 박에게는 이제 핫팩이 있었고 하양은 새로운 핫팩을 뜯었다. 둘은 그래도 붙어 있었다.

 

“하양이에요.”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자 그녀가 다시 한 번 말했다.

 “이름이 외자에요. 성이 하고, 이름이 양이에요.”

 “하양 양, 오늘도 하얀 양털 옷을 입으셨네요.” 전이 연극 투로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저는 김도엽입니다.”

 “저는 박성옥이에요.” 나와 박이 전의 이상한 유머를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저는 전태웅입니다.” 전이 눈치를 보다 외쳤다.

 하양이 웃었다. 하양은 피부가 투명했다. 뺨에는 발간 홍조가 일었다. 하양은 속눈썹이 길었고 눈이 컸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은 숱이 많고 곱슬기가 심해서 푹신푹신해 보였다. 웃을 때는 잇몸이 보였고, 치열이 골랐다. 하양은 양과 닮았다. 그녀가 입고 온 하얀 양털 옷은 그녀에게 잘 어울렸다.

 우리는 차돌박이 집에서 차돌된장과 소주를 시켰다. 우리는 술을 마시며 박의 무심한 성격에 대해서, 비어있는 가방에 대해서 말했다. 하양은 줄곧 눈을 반짝이며 박의 역사를 수집했다. 나와 전이 장난을 치면 박이 얼굴을 붉혔고 하양은 웃었다.

 우리는 평소보다 적게 마시기로 했다. 대신 콜라와 사이다를 시켰다. 뽕 소리를 내며 콜라를 땄을 때, 하양은 느닷없이 고백을 했다. 저는 한 번도 콜라를 마셔본 적이 없어요.

 “태어나서 한 번도요?” 전이 물었다.

 “네. 한 번도요. 신기하죠? 그렇다고 탄산음료를 안 마시지는 않아요. 무슨 신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렸을 때 부모님이 콜라가 몸에 안 좋다며 사이다만 주셨어요. 광고에서 사이다가 깨끗한 이미지로 나오고 투명하니 콜라보다는 괜찮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그래서 사이다는 마시게 해주셨어요. 요즘은 부모님들도 콜라를 마시세요. 그런데 저는 이상한 도전 의식이 생겨서 콜라를 안 마시고 있어요. 언젠가는 기네스북에 등재될지도 모르잖아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쟁쟁한 경쟁자가 많기도 하고, 코카콜라가 아직 세상의 절반밖에 지배하지 못 했으니 아직은 힘들겠네요. 그래도 지금은 세계화 시대잖아요? 디즈니에서 만든 <겨울왕국>이 세상을 다 덮은 것처럼 곧 코카콜라가 세상을 지배할 거에요. 지구를 덮은 코카콜라 나라의 유일한 레지스탕스, 너무멋있지 않냐?” 전이 나를 보며 말을 마쳤다.

 “<겨울왕국>이라는 영화는 없어. <눈의 여왕> 말하는 거지? 그 영화는 디즈니에서 만들지도 않았어. 내가 영화 전공이니까 믿어도 돼.” 전은 종종 이름이나구체적인 사항을 이상하게 기억하곤 했다.

 “그건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야.” 내가 틀린 부분을 지적하면 전은 항상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대단한 신념같은 게 아니래도.” 하양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웠다. 하양도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니코틴이 온몸에 퍼지며 취기가 올랐다. 연기가 피어 오르는 담배를 보며하양이 콜라를 마시는 모습을 상상했다. 

누군가 그녀가 먹는 사이다에 코카콜라를 딱 한 방울 떨어뜨리고 간다. 그 사실을 모른 채 하양은 코카콜라가 0.01% 함유된 사이다를 들이켠다. 잠시 후, 하양은 피를 토하며 바닥 위로 쓰러진다. 그렇게 박은 혼자가 된다.

 

 “캬~” 하양이 잔에 든 잭콕을 입 안으로 마저 털어넣었다. 연말을 맞아 서울 근교에 있는 박과 하양의 아파트에서 오랜만에 술판을 벌였다. 우리는 얼근히 취해서는 양주 진열장을 열었다. 전이 한 때 칵테일바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칵테일을 만들었다. 집에 음료가 많지 않아 만들 수 있는 칵테일이 많지 않았다. 나는 주시쿨로 만든 섹스온더비치를 마셨고 박은 믹스커피로 만든 에스프레소 마티니를 마셨다.

 하양이 한 번 더 잭콕을 주문했다. 전이 그 자리에서 콜라와 위스키를 하양의 잔에 부어줬다. 새로운 잔을 받아 든 하양은 한 모금을 들이켰다. 우리는 그 모습을 말 없이 지켜봤다. 아직도 우리는 하양이 콜라를 마시는 모습을 보면 아쉬워 한다. 전이 나와 눈이 마주쳤고 우리 둘은 웃었다.

 “너네 또 콜라 생각했지?” 웃는 우리 모습을 발견한 하양이 우리를 쏘아붙였다. “에휴, 그 놈의 콜라가 뭐라고.” 그리고 우리를 고문하기라도 하듯 2L짜리 페트 병에 든 콜라를 병 째로 들이켰다. 콜라가 흘러서 하양의 양털 조끼에 묻었다.

 “너 진짜 얘가 왜 콜라 마시게 됐는지 아직 몰라?” 내가 박에게 물었다.

 “응. 말 안 해줘.”

 “너네가 자꾸 콜라에 의미를 두니까 더 말을 안 해주는 거야. 그렇게 대단한 신념이 아니었으니까 대단하지 않은 일로 깨진 습관이야. 애초에 너희들은 왜 그렇게 콜라에 의미를 두는 거야? 또 그 놈의 자본주의 이야기를 할 거면 입 닥치고 있어. 도엽이는 아이폰을 쓰고 태웅이는 폴더블폰을 쓰잖아. 너네 그거 샀을때 진짜 좋아했잖아. 기억 나? 애초에 자본주의의 대안이 있기라도 해? 그리고 말인데, 내 콜라는 무슨 상징같은 게 아니란 말이야. 내가 언제 너네 앞에서 애덤 스미스 이야기를 했니, 아니면 커피농장 이야기를 하기를 했니?”

 “상징적이네.” 전이 말했고 우리는 크게 웃었다. 하양도 웃으면서 화장실로 향했다. 잠시 후 그녀가 돌아왔을 때 양털 조끼에 묻었던 콜라가 사라져 있었다. 콜라가 묻었던 곳에는 물이 반짝이고 있었다.

 “양이 말이 맞아. 양이는 처음 만났을 때와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콜라는 먹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피부가 투명하고 예뻐. 머리 스타일이 변하기는 해도 여전히 곱슬머리야. 그리고 여전히 양털 옷을 좋아해.” 박이 말을 하며 하양의 양털 옷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손바닥이 옷 안으로 푹푹 들어갔다.

 “아니. 그건 아니지. 나이가 들었고 피부는 예전이랑 달라. 모발도 얇아졌어. 양털 옷은 좋아한다기 보다는 그냥 자주 입는 거야. 변하지 않은 건 너를 향한 내마음 뿐이야.” 하양이 눈을 감으며 박에게 기댔다. 그러고는 박과 함께 우리 쪽을 쳐다봤다. 티비에서 연말시상식의 음악이 끝나고 박수가 쏟아졌다.

 나와 전은 조용히 일어나서 집 밖으로 나왔다. 쌓였던 눈이 녹아서 질퍽거렸다. 눈 위로 차가 지나가고 발자국이 찍혀서 군데군데 떼가 묻어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걷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어서 외투 지퍼를 코 끝까지 올리고 얼굴을 파묻었다. 입김 때문에 안경에 서리가 꼈다. 

쿵. 전이 얼음을 밟고 뒤로 자빠졌다. 주머니에서 미처 손을 빼지 못했는지 두 손이 여전히 주머니 안에 있다. 전은 아파트 사이로 보이는 밤하늘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전의 안경에도 김이 서려서 볼 수는 없었지만 전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서 전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야.” 전이 엉덩이를 털면서 말했다.

“성옥이랑 하양 보니까 설레지 않냐. 나도 전 와이프 생각난다.” 또 시작이다. 전은 결혼같은 거 하지 않았다. 그러니 전에게는 전 와이프가 있을 리 없다.

 “다음에 하양이 콜라를 마시게 된 이야기를 해줄게.”

 

(계속)

 

 

 

 

by. 김도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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