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씁니다
햄버거의 가격 본문
대화 속 ‘기회’라는 키워드가 초중고 ‘무상급식’으로 이어졌다.
전반적인 통계를 보았을 때, 시행 초기에 발생했던 우려와 달리 이젠 무상급식의 긍정적인 효과를 부정하기 힘들어진 듯하다. 그리고 그 기대 효과 중 하나는 바로 ‘아이들이 눈치를 보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확한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위한 조사가 좀 더 필요하겠지만, 최근 ‘학교 폭력도 줄었다’는 해외 연구 결과가 나올 정도이니 큰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무상급식이 중단될 일은 없을 것 같다.
전면 무상급식이 시행되기 전, 선별 과정에서 신청 대상자인 아이들이 해당 신청서를 준비하고 제출하는 동안 당당하지 못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당연했으리라. 그런데 정말 주변 아이들은 그것을 놀림의 대상으로 삼고, 더 나아가 그것이 ‘학교 폭력’이라는 결과로 이어질까. 급식을 먹던 우리의 기억을 통해 시작된 질문이었다.
그 정도로 아이들이 분별없고 악의적인가. 내 기억 속에도 분명 무상급식을 포함한 어떤 신청서를 제출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남아있다. 그러나 그것이 친구들과의 불화의 원인이 된 기억은 없었다. 아이들의 갈등은 늘 특정 상황에서의 사소한 이해관계로부터 비롯될 뿐이었다. 혹시 지역적으로 낙후된 곳에서의 극단적인 예가 부풀려지며 보편성을 갖게 된 것일까.(무의식적으로 자본 속 계급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내가 입학한 곳은 운 좋게도 같은 반 친구의 경제적 부족을 문제 삼지 않는 친구들만 있던 곳이었을까. 그러다 문득,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2학기로 기억한다. 선거가 끝나고 반장이 된 친구의 어머니가 반에 햄버거를 보내주셨다. 아이들은 모두 햄버거 세트를 하나씩 받았고, 교탁에는 주인 없는 햄버거가 세 개 정도 남아있었다. 혹시 몰라 보내주신 여분인 듯했다. 그런데 내 앞에 앉은 두 친구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고, 교탁에서 그 소음을 들은 선생님은 그중 한 명에게 말했다. “OO이, 햄버거 가지고 앞으로 나와.” 차가운 목소리였다. 이름이 불린 친구는 천천히 자신의 햄버거를 들고 일어났다.(그의 억울한 표정은 여전히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다.) 12살밖에 안 된 우리는 그 친구가 혼자만 떠든 걸로 오해를 받았을 뿐 아니라 곧 햄버거마저 뺏길 그 상황을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앞으로 나가 선생님께 햄버거를 내밀던 OO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햄버거를 건네받은 선생님은 교탁 위에 남아있던 햄버거를 포함해 전부 종이가방에 넣어 그에게 건넸다. “집 가서 동생들이랑 먹어.” 따뜻한 목소리였다. OO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못했다). 그 모습을 보던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OO는 종이가방을 두 손으로 받고 목례를 한 뒤 자리로 돌아갔다.
어린 우리의 눈에 그것은 분명 ‘특별 대우’였고, 덕분에 얼마 안 가 주변 상황에 둔감했던 나 역시 그 친구의 가정사에 대한 얕은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한 부모 가정인 그 친구에게는 두 동생이 있고, 그중 한 명은 장애를 갖고 있었다는 것. 미안해졌다. 그깟 햄버거로부터 촉발된 질투가 창피했다. 그리고 얼마 뒤, OO와 말다툼을 하던 또 다른 친구가 그에게 말했다.
“네 동생은 장애인이잖아!”
‘대부분의 친구들이 가진 것’을 자신은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과 ‘원하지 않은 것’을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갖게 된 것은 그 자체로도 상처이지만, 그것을 남이 알게 되어 일방적인 갈등이 될 여지가 있을 경우, 이를 예방할 수 있고 예방해야 하는 것은 분명 어른의 몫이다. 따뜻한 말투와 함께 햄버거를 건네던 선생님의 그 모습은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힘든 누군가가 있다면 직접 나서 도와주라’는 말에 정확히 부합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햄버거는 하나가 적당했다. 5학년이 끝날 때까지, 아니 어쩌면 졸업 때까지 햄버거의 대가를 상환하기 위해 그 친구가 어떤 고통을 겪었을지, 여전히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by. 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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