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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야

오늘의 대화

우리도 씁니다 2021. 5. 4.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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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핸드폰 앞자리가 ‘010’이 아닌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가 봐.” 

 그녀가 말했다.

 “그럼 투지폰을 쓴다는 거 아니야? 안 불편한가?”

 내가 반응했다.

 “불편해도 쓰는 거면, 왜 쓰는 거 같아?”

 또래 친구들보다 늦게 핸드폰을 샀던 게 생각났다. 돌이켜보면 그 전까지 내가 불편한 것은 거의 없었다. 다만 연락이 안 될 때마다 부모님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불편했을 뿐.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젠 없어서는 안 될것 같은 메신저들이 누군가에겐 가져본 적도 없는 것일 수도 있다.

 “하긴, 본인은 불편하지 않을 수도 있겠네.”

 “그냥 쓰던 걸 계속 쓰고 싶다는 건가.

 “그렇지. 일종의 관성처럼. 그리고 핸드폰 바꾸는 것보다 번호 바꾸는 게 더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해.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이 좀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얼굴들이 지나갔다. 상대적으로 연장자인 이들. 그리고 그 안에는 우리 할머니의 얼굴도 있었다. 벨소리 하나에도 예민한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그들의 경우만은 아니었다. 정체성과 같은 자신의 핸드폰 번호가 변하는 게 싫은 건 다들 마찬가지일 것이고, ‘016’과 같은 앞자리가 나온 지는 적어도 20년이 넘었기에 그들이 나이가 많아 보이는 건 당연했다.

 “그럼 단지 번호 바꾸는 거 자체가 귀찮아서?”

 그녀가 물었다.

 물론 귀찮아서가 유일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다만 그저 귀찮은 것은 아니지 않을까. 주머니에 든 이어폰이 생각났다. 방 책상에 블루투스 이어폰이 있지만 잘 쓰지는 않는다. 단지 쓰던 이어폰이 편한 것 같아서는 아니다. 이유 중에는 가격도 있고, 충전이 필요한 것도 있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가 따로 있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제대로 꼽지 않은 이어폰 때문에 유튜브 속 스트리머의 괴성이 다른 승객들의 귀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블루투스 연결 역시 끊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생각과 함께, 선물 받은 블루투스 이어폰은 청소나 설거지의 조력자가 되었다.

 “물론 우리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지.”

 “예를 들면?”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 바꾼 번호의 전 주인 때문에 이상한 전화가 자꾸 온다거나, 아니면 번호나 기기를 바꾸면서 안에 있는 정보들이 다 사라져버린 기억 때문일지도 모르지.”

 지하철의 그 순간이 또 한 번 크게 다가왔는지, 그들을 변호하는 느낌이었다.

 “다른 이유는 없을까?”

 “다른 이유? 글쎄.”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거면?”

 일본의 한 애니메이션 영화가 떠올랐다. 떨어지는 벚꽃잎만큼이나 느렸던 시기에 전화로만 안부를 묻던 두 사람의 이미지였다. 바로 영화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기다리는 게 누군지 들어보고 싶었다.

 “누구를?”

 그녀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가족을 기다리는 거래······.”

 감정의 범위가 커졌다. 생각하고 있던 이미지는 가족을 주제로 한 한국 상업 영화들로 이어졌다. 수화기를 든 채 두 사람이 서로의 목소리를 확인하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신파라는 단어도 자연스럽게 따라붙었기에, 단조로운 반응이 튀어나왔다.

 “영화적이네.”

 그리고 그녀가 말을 이었다.

 “······실종된 자식한테 언제 전화 올지 몰라서. 번호를 못 바꾼다고 하더라구.”

 팽창하던 감정이 일순간 점으로 수렴했다. 영화가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다른 이미지들이 떠올랐다. ‘다큐뉴스였다.

 

 생각해본 적 없는 어떤 얘기를 들으면 그것을 서사적 구조 안에 넣고 이런저런 갈등을 생각해본다. 힘을 가진 얘기일수록 그런 의지가 강해진다. 그러나 오늘의 대화에서 들은 이야기는 서사의 구조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함부로 이야기화 할 수 없는 이야기. 물론 언젠가 서사 안에 넣고 싶어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다만 오늘은 아니었다.

 

 

 

 

 

by 환야

 

 

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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