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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야

이중성과 합리성

우리도 씁니다 2021. 2. 8.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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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변호사가 담당한 남자는 의도적으로 피해자를 살해하고 유기한 혐의를 갖고 있다. 변호사와 검사, 그리고 판사는 재판 전에 모여 진행과 결론을 의논한다. 검사와 판사는 최고 형벌로 결론짓기를 원한다. 재판 막바지에 갑자기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등 피의자의 비일관적인 행동으로 인해 변호사도 이제는 그것이 불가피한 것을 안다. 게다가 법조계라는 한 배를 탔기에 더 이상 밀어붙이는 것도 자신에게 좋지 않다. 이젠 감정을 담아 피의자를 위로하고,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고 되뇌이는 게 최선이다. 재판이 끝났다. 변호사는 피의자의 자백을 상기한다. 앞에 놓인 시체를 보며, 그는 뺨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닦았다고 한다.

변호사가 법정을 나온다. 해가 지고 있다. 붉은 노을빛이 그의 뺨에 닿는다. 그는 뭔가 묻었다는 듯이 손등으로 뺨을 훔친다.

 

영화 속 장면이다. 스포일러가 되기에 제목을 밝히고 싶지는 않고, 유명한 일본 감독의 작품인 것만 밝히고 싶다. 변호사가 뺨을 닦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역시 피의자와 똑같이 살인을 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리고 차이가 있다면, 그 행위가 법정에서 이루어졌다는 것과 직접적으로 그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형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을 단순히 살인이라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변호사는 괴로움을 느낀다.(이는 단순히 실패한 변호 때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노을이 뺨에 닿자 뭔가 튄 것처럼 손으로 닦는다.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피가 아니라 법이라는 이름으로 빛나는 명분이기 때문에.

 

종종 영화에서는 이처럼 을 통해 사회적인 갈등을 만들어내는 원인의 이중성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흥미로운 것은 시각적으로도 그렇지만, 빛은 실제로도 이중성을 가진 물질이다.

 

2.

빛은 입자(粒子)성과 파동(波動)성을 동시에 갖는다. 두 성질을 동시에 갖는 게 인정되기까지 적잖은 갈등이 있었다. 각 진영에서 상대의 주장에 반하는 실험과 그 결과를 들먹이며 대립한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두 성질을 인정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수학이나 과학에서 존재라는 것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오류가 있으면 안 된다.(물론 과학의 발전에 따라 많은 수정이 생기긴 했다.) 그리고 두 가지 이상의 성질을 가지면 그것은 오류가 된다. ‘1, 2, 1, 2, 1, 2, 1,······’라는 수열은 수렴하지 않고 진동’, 발산한다. 정해진 하나의 값이 없기에, ‘1’‘2’라는 명확한 수가 보임에도 수렴 값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 때문에 빛의 이중성이 인정됐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그리고 이는 빛의 이중성인 동시에, 그것을 인정한 인간의 합리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합리적으로 빛의 이중성을 밝혀내고 인정한 것이 인간인데, 게다가 그것을 연구한 역사보다도 오래된 것이 인간의 역사인데, 시간이 갈수록 우리는 누군가의 생각이 이중성또는 그 이상을 갖는 것에 대해 합리적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어느새 이중적이라는 표현은 말 그대로 독립적인 두 성질을 갖는 것을 넘어서 어떤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문제에 직면했을 때, 누군가는 왼쪽으로 크게 핸들을 돌려 문제해결을 시도할 수 있고, 다른 누군가는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릴 수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방향을 정하지 않고 그대로 정지한 뒤 생각에 잠길 수 있고, 다른 이는 조금만 오른쪽으로 돌리거나 조금만 왼쪽으로 돌려서 고민할 수 있다. 그리고 어제는 왼쪽으로 핸들을 돌린 누군가가 오늘의 문제 앞에서는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릴 수 있다. 이때 누군가 와서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따진다. 왜 헷갈리게 방향을 바꾸냐고.

 

3.

<굿와이프>라는 드라마에서 증인 신분으로 법정에 선 여주인공(전도연)에게 검사가 묻는다.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사랑한다는 겁니까.”

갈등을 겪어온 그녀가 검사를 보며 단호하게 답한다.

사람의 감정을 그렇게 딱 잘라서 설명할 수 있습니까? 전 남편을 사랑하고, 또한 증오합니다. 매일매일 바뀝니다.”, “지금 저한테 뭘 원하시는 겁니까.”

 

오늘도 우리는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감정이나 의견을 동시에 선택하는 누군가를 보고 이중적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합리적인 판단일까. 아니, 오히려 그 이중적인 선택이 더 합리적이지 않았을까.

 

 

 

 

by. 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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