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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야

그 한 모금의 차이[1월 : 술에 대하여]

우리도 씁니다 2021. 1. 25.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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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네이버 영화

홍상수 감독의 최신작을 보았다. <도망친 여자>라는 제목의 영화인데, 늘 그래왔듯, 극적인 사건이 없을뿐더러 형식적인 변화도 두드러지지 않았다. <북촌 방향>(2011)이나 <자유의 언덕>(2014)의 경우 형식적인 변화가 명확했고, <옥희의 영화>(2010)는 네 편의 단편작들을 모아놓은 것이기에 그것만으로도 큰 변화이자 일종의 사건이었다. <북촌 방향>을 기점으로 그의 영화는 점점 소설보다는 시적인 형식을 띠기 시작했고, 이번에도 그러한 형식적인 부분이 존재했지만, 그게 다인 것처럼 보인다. 물론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서는 여전히(작품성적인 측면이 아닌 존재감의 측면에서) 독보적인 형태였다. 그러나 2011년 이후 늘 그런 형식적인 모습에서만 흥미로운 것은 아니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7)는 누가 보아도 각본가이자 감독 자신의 상황임을 보여주는 내용을, 노골적으로 대사까지 사용해 옮겨놓았고, <강변호텔>(2019)에서는 그간 한 번도 심각하게 다루지 않았던 ‘죽음’을, 본인을 투영시킨 듯한 인물의 외로움을 통해 드러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영화들은 독립적으로 본다면 의아한 작품들이 되겠지만, 매년 개봉하는 작품들 사이의 미묘(하거나 확실)한 차이들을 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다. 거기다 제작비가 적은 것도 분명 중요한 조건이리라.

 

그런데 언급한 최신작에서는 큰 차이가 잘 보이지 않았다. 아니, 어떤 차이는 분명 있었지만, 그게 자신을 반영하거나 어떤 감정적인 부분이 섞여 작동하는 모습이라 볼 수는 없었다. 물론 내가 이해를 못 한 것일 수도 있다. 또는 이해하는 방식보다는 느끼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그 안에 작품성이라 부를 수 있는 요소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일 수도. 뭐, 이런 적이 한두 번이었던가. 그러다 보면 감독의 다음 작품, 또는 그다음 작품에서는 영화의 예술적인 부분을 깨닫는 순간을 느끼(었다고 착각하)며 높은 별점을 기록할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도대체 이번엔 뭐가 좋았을까. 절망스럽지는 않았다. 말했지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와 비슷했던 다른 작품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언급했던 <북촌방향>이라는 감독의 전작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존재했고, 오랜만에 다시 그 작품을 보았다.

 

주인공과 지인들은 어떤 술집을 ‘세 번’ 간다. 일반적인 시간순으로 본다면 그들은 사흘 밤마다 그곳에 간 것이지만, 주인공의 내레이션은 마치 그 순간들이 서로 다르지만 같은 순간인 듯 헷갈리게 만든다. 그 세 번의 장면은 비슷하지만, 차이들이 존재한다. 조금 다른 갈등, 조금 다른 위치, 조금 다른 시간. 그리고 등장인물들을 제외하고 늘 같은 것도 존재한다. ‘술’이다.

 

홍상수의 작품에서 늘 존재하는 것이 ‘남자’, ‘여자’, ‘술’ 그리고 ‘침대’라는 말은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고, <북촌 방향> 역시 그 말에 힘을 보태기 충분한 작품이다. 그리고 그 술자리와 이어지는 장면들에서 우리의, 좀 더 정확히는 남자들의 ‘찌질한’ 모습이 드러난다. 그런데 이것이 꼭 술이 있어야만 표현할 수 있는 것일까.(이때쯤부터 <도망친 여자>에 대한 궁금증은 사라졌던 것 같다.)

 

홍상수 작품에서 배우의 연기는 늘 흥미로운 요소였다. 저 배우가 저렇게 연기를 잘 했던가. 그의 연기 연출에는 어떤 비밀이 있는 걸까.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그의 작품 촬영 일정동안 각 회차의 각본은 당일 아침에 나온다. 배우들에게는 연구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2회차 촬영부터는 그 이전 회차의 케릭터가 있었기에, 선택의 여지 없이 그것을 기반으로 인물을 구축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배우 본연의 모습이 투영될 수밖에 없다. 반은 연기고 나머지 반은 아닌 것이라 해야 하나. 흥미로운 지점은 시간을 포함한 이런저런 제약과 즉흥성 덕분에, 프레임에 담기는 두 명 이상의 배우들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긴장감과 어색함은 캐릭터 사이의 것임과 동시에 그 배우들 자체가 공유하는 것으로 보이고, 그의 작품들은 그 세세한 것들마저 롱테이크를 사용해 전부 프레임 안에 담는다. 게다가 배우들이 마시는 술은 진짜 술이다.

 

술은 한 잔마다 변화를 만들어내고, 그 관성은 갈등 없는 상태를 변화시키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그 말을 그 술자리에서 자신이 왜 했는지 아직도 납득할 수 없다. 그리고 배우들은 그것을 연기로 표현해야 한다. 물론 직접 술을 마시고 연기하는 것을 누군가는 실감나는 방법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기술적인 측면에서이다. 컷과 컷 사이의 존재는 그것이 연기라는 사실을 배우와 관객에게 어떻게든 각인시킨다. 그러나 그것이 한 테이크만으로 프레임에 담긴다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게다가 자신의 실제 모습을 반 이상 담고 있는 연기의 순간이라면, 술의 쓴맛을 느끼는 그 표정부터 균형을 약간 잃은 걸음걸이까지, ‘액션’과 ‘컷’을 외치는 감독의 목소리 사이에 그 변화들은 진짜 변화가 되고, 연기가 아닌 실제 순간이 되며, 우리는 그 미세한 변화들을 면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떠올린다.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누군가는 그의 작품을 보면 벌거벗겨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보지 못한다고 말한다. 달리 말하면 가장 사실적인 모습을 띤 것이 그의 작품이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의 영화는 술과 침대가 없으면 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술이 있고,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변화 중 하나가 그 공간이지 않았냐고 묻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술 자체가 자주 나와서 불편한 게 아니라, 술로 이어지고 술로 이어가는 그 변화의 순간들이 있는 그대로 표현되는 그 모습이 어떤 기억을 상기시켜서 불편해진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것을 작품성이라고 말한다.

 

이미 아는 모습으로 약간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거기서 새로운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이번 신작을 보면서 그랬다.) 그러나 약간의 변화일뿐 끝 맛은 그대로인 느낌, 게다가 무언가 생각나서 속이 쓰리다. 술자리 후의 속 쓰림을 잊고 다시 누군가와 마시듯, 마치 술 같은 그의 영화를 다시 찾는 이유는 일종의 중독 현상 때문이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by. 환야

 

 

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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