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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한탄 아닙니다 본문
8시에 과외가 있었다. 장소는 ‘스터디 카페’ 안에 있는 ‘스터디 룸’이고, 정각이었지만 학생은 도착 전이었다. 늘 5분 이상 기다리는 게 일상이었기에, 화이트보드 위치를 조정하고 앉아서 내일 일정표를 점검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학생일 터였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네’라고 답했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은 스터디 카페의 주인이었다. 뭔가 작은 문제가 생긴 것을 직감했고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물음을 대신했다. ‘유감이다’라는 단어가 도드라진 표정과 함께 그는 예약한 시간이 변경된 것 같다고 말했다. 직감이 맞았다. 동시에 전날부터 시작된 방역 2단계에 포함된 사업장 수칙이 머리에 스쳤다. 학생 쪽에서 예약을 취소했거나 다른 날로 예약 시간을 변경한 것이었다. 생각보다 아주 당황스럽지는 않았지만,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주인이 태도였다. 마치 스터디 그룹의 다른 멤버들에게 혼자만 공지를 받지 못한, 안타까운 상황에 놓인 학생을 마주한 듯한 조심스러움이 스며들어 있었다. 당황스러워 보이는 상황을 설명하는 대신, 나는 잠시 통화 한 통을 하여 확인해봐도 되겠느냐 물었다. 주인은 흔쾌히 허락하며 문을 닫고 나갔다. 안타까운 상황에 놓인 손님을 배려하는 말투와 몸짓이었다.
먼저 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짧지 않은 신호음 후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냐고 물었고, 학생은 ‘뭐지’하는 느낌으로 수업 시간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예상한 그대로의 진행이었고, 그럼 왜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엄마가 연락할 것이라 생각했다는 예상은 또 한 번 적중했다. 일단 알겠다고 한 뒤 끊고 학생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재 독서실에 왔다는 말에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분명 학생으로 하여금 나에게 변경 사실을 전달하라 말했다고 답했다. 예상에서 벗어난 반응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알겠다고 하며 다음 수업의 날짜와 시간을 확인한 뒤 전화를 끊고 방을 나왔다. 출입구로 향하며 주인을 또 한 번 마주쳤고, 여전히 유감스럽다는 표정과 함께 인사를 건넸다. 나는 웃으며 인사하고 걸음을 옮겼지만, 웃음을 반 이상 가리고 있던 마스크 덕분에 그 오해는 계속 유지될 것 같았다.
반 층 내려와 건물 계단에 서서 다시 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한 것들이 다 맞았는지 좀 더 확인하고 싶었다. 일단 학생의 엄마에게서 들은 것들을 재확인했고, 여전히 두 사람의 주장은 엇갈렸다. 삼자대면까지 필요한 것은 아니기에 그쯤 해두고 숙제는 다 했느냐 물었다. 반도 못 끝냈을 거라는 생각이 또 맞았다. 남은 양에 좀 더 얹어 숙제를 내주고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건물을 빠져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말했듯이 당황스럽거나 화가 잔뜩 나지는 않았다.(아닌 것 같다면, 아닐 수도 있다.) 사실 혹시 모르니 연락을 해볼까 생각했었다. 저번 주까지는 수업 시간이 6시였고, 이런 변경이 있을 때마다 꼭 어떤 문제가 발생했었다. 게다가 9시까지로 제한된 영업시간을 생각하지 못한 것은 내 안일함 때문이기도 했다. 물론 누가 보아도 내 잘못이라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통화한 두 사람의 캐릭터를 수개월이라는 시간에 걸쳐 인식하고 있던 것도 사실이기에, 그 우려를 발판으로 통화를 한 번이라도 했다면 이런 시간 낭비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소통이 문제라는 결론이 나왔다.(결론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진통제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수많은 우려 사이에서 ‘괜찮지 않을까’라는 귀찮음으로 얼마나 크고 작은 갈등이 있어왔던가. 거절당할지 모른다는 걱정으로 컨택을 미루고, 괜히 귀찮게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로 프로젝트의 결과물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문제가 있을 것 같으면 소통을 시도해야 한다. 너무 기본적이지만 계속해서 간과하는 것 같다. ‘이번엔 괜찮겠지’라는 생각은 대부분 배신당한다.
집에 도착했고, 다음날까지 나오기로 한 내 작품의 편집본이 생각나, 편집자에게 연락했다. 일이 많이 겹쳐 다음날까지 못 할 수도 있다는 답을 들었다. 마음이 편했다. 언제 나오나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어졌다. 우려된다면, 또 연락해보면 된다. 그게 흔히 말하는, 나를 포함한 이들에게 부족한 소통 중 하나였다.
by. 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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