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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야

삶이라는 최선

우리도 씁니다 2021. 11. 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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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정 감독의 <최선의 삶>에는 세 여고생이 나온다. 그리고 작은 것에도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만들어지는 시기 속 이 이야기의 결말은 파국에 가깝다. 상영관을 나와 나름의 ‘한 줄 평’을 기록한 뒤 다른 평을 찾아보았고, 그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나는 그 시절을 어떻게 통과했을까.”

 

나 역시 의문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도 아닌 것들이 참 별것으로 느껴지던 시절이었는데, 난 어떻게 그 소용돌이를 통과했을까. 작년까지만 해도 라떼를 한 잔 마시며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부모, 경제적인 상황, 기회가 불평등한 환경 등이 그것들을 좌지우지한다고. 특히 학업에 있어서 머리가 좋고 나쁨은 문제가 아니며, 전부 기회와 의지의 문제라고. 그렇다면 결국 내가 그 격정의 시기를 큰 문제 없이 통과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환경이 좋았기 때문이다. <최선의 삶> 속 소녀들처럼 가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기는커녕, 갈수록 그 울타리가 안전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학원에 강의를 나가 다양한 아이들을 마주하고, 과외를 통해 몇 아이들과는 나름의 대화를 나누면서 조금씩 그 생각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절대 바꿀 수 없는, 타고난 것이 있는 게 아닐까. 어떤 방법으로도 바꿀 수 없는.(누군가는 그것을 ‘운명’ 또는 ‘팔자’라고도 부른다.)

 

<최선의 삶>의 세 친구의 부모 중 관객이 유일하게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은 ‘강이’(방민아)의 부모이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강이에 대한 그들의 양육에 있어서 큰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딸을 사랑하는 게 고스란히 느껴지는 부모의 모습, 그러나 강이는 친구들과 함께 가출을 결심한다. 이상하다. 강이를 제외한 세 명 중 한 친구는 아버지로부터의 지속적인 폭력이 있었고, 나머지 한 명은 제멋대로의 삶을 살아왔기에 가출을 그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강이’는 그들과 함께 가출을 한 것일까. 물리적인 억압이나 지나친 방관의 피해자로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다행히 강이는 다시 집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또다시 집을 나간다. 두 번째 가출에서도 뚜렷한 이유나 목적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상황은 더 안 좋아질 뿐이다. 그러다 결국 강이는 충동적으로 보이는 선택을 한다.

 

마지막 강이의 선택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지만, 그간 수동적으로 행동해 온 그녀의 태도와는 상반됐기 때문에 일종의 성장으로도 느껴진다. 그러나 실제로 누군가의 극적인 행동은, 당연하겠지만 절대 성장과 같은 긍정적인 측면으로 볼 수 없다. 일반적으로 ‘최선(最善)’이라 말할 수 없어서이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그녀의 삶에서 처음으로 최선을 다한 선택의 결과라면? <최선의 삶>은 강이의 과거로 찾아가 파국의 원인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강이이고, 이 작품의 질문이 그런 인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리라.

 

좋은 결과를 마주했을 때 우리는 ‘최선’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과정’의 영역에 자리한 최선이라는 단어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로 인한 결과를 척도 삼아 해당 단어를 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가 최악으로 보임에도, 분명 마지막 강이의 선택은 최선의 선택이었다. 게다가 가장 능동적으로 한 선택이기에 성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최선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무기력함으로 이어진다. 아, 어쩌면 한 번씩 무기력함을 마주하는 지금 이 순간은 이러한 각자의 최선이 모여 만들어진, 거대한 ‘최선의 삶’이 아닐까.

 

지금은 나가지 않는 학원에서, 나는 보충이 필요하다 싶은 아이들을 자주 남기는 악명 높은 선생이었다. 그리고 가끔 선임 선생님들의 안타까운 시선이 문득 느껴지곤 했다. 그 시선은 늦은 귀가 때문에 울상이 된 아이들이 아닌, 각자의 최선을 부정하는 나를 향한 시선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최선에 서 있는 아이들의 삶이, 정말 나의 최선을 통해 바뀔 수는 없는 것일까.

 

출처 - 네이버 영화

 

 

 

by. 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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