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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야

당연한 것

우리도 씁니다 2021. 10. 7.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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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는 뮤지컬을 전공했다.

어느 날 또 다른 친구 K는 Y에게 직장 상사의 결혼식 축가를 부탁했고, 하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 Y는 감사의 표시로 돈을 받았다. K는 식장 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Y의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나에게 보여주었고, 화면을 보며 이전에 노래방에서 함께 노래하던 생각이 났다. 단순히 즐기던 목소리로, 뮤지컬을 전공한 친구는 돈을 벌었다. 일차원적인 생각이었다.

 

몇 주 뒤에 K와 Y를 만났다.

늘 그랬듯 밥을 먹고 술을 한 잔 하러 갔다. 노래방을 잠깐 들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섣불리 노래방을 가자고 말할 수 없었다. 여전히 확진자가 발생하는 시점에서 밀폐된 공간을 들어가자는 게 쉽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그보단 목소리로 돈을 벌고 있는 친구의 노래를 아무런 보답 없이 듣는 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 이유가 더 컸다.

 

한 웹툰 작가의 말도 떠올랐다. 그는 어렸을 때 그림 그리는 것 자체가 좋았는데, 전업 작가로 일하고 있는 지금은 단순한 ‘원’ 하나도 돈을 주지 않으면 그리고 싶지 않다는 말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그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잘 쓴 리포트에 가격을 매겨 돈을 받고 공유하는 사이트를 통해, 학 학기에 고작 커피 한두 잔 사 마실 수 있었던 색다른 경험은, 더 좋은 리포트를 만들고자 하는 의욕을 만들어냈지만 동시에 팔리지도 않을 거면 굳이 제대로 쓸 필요 없다는 안일한 생각으로도 이어졌다.

 

취미는 취미로 남겨놓고, 일은 일로 남겨야 한다는 연장자들의 말. 김칫국에 한없이 가깝고, 내가 너무 속물적이어서 일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내가 좋아서 만들어낸 뭔가로 금전적인 이익을 얻게 된다면, 이후 그것을 순수하게 즐기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함이 생긴다.





 

by. 환야

 

 

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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