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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야

커피와 두통

우리도 씁니다 2021. 10. 20.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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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간이 없었다.

마지막 알람을 듣고 눈살을 찡그리며 10시 상영 영화는 취소했다. 밤만 되면 안 되던 것들이 가능해지는 환상의 늪에 빠진다. 신음, 그리고 한숨. 후회와 함께하는 또 다른 아침이었다. 후회는 고민으로 이어졌다. 10시 영화를 본다면 다음 영화까지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으니, 같은 영화를 근처 다른 극장에서 보고 넘어가면 전날 계획한 ‘완벽한 일정’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고민 속에서 그렇게 20분을 또 누워있었다는 것이다.

 

“오케이. 10시 반쯤 상영하는 곳으로 가면 된다.”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핸드폰 화면을 켰다. 10시 35분에 상영하는 곳을 발견했다. 예매, 10분이 또 지나있었다. 샤워한 뒤 바로 밥솥을 열었지만, 밥솥은 어제부터 식어있었다. 덕분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았다. 그리고 옆에는 라면이 보였다. 바로 물을 끓였다.

 

2.

계획은 계획일 뿐이었다.

허겁지겁 뜨거운 면을 입안에 밀어 넣고 집을 나왔다. 생각해보니 아침에 마시려던 커피를 못 마셨다. 저녁까지 영화를 볼 생각이라 이후 커피 마실 시간이 없었다.

“또 두통이 오면 어떡하지.”

카페인 중독 현상 중 하나가 ‘두통’이라고 한다. 커피를 달고 사는 동생에게 들었다. 인터넷에 나열된 증상 중 하나도 그것이었다. 쓴맛에 ‘아메리카노’도 안 먹는 내가 ‘중독’이라는 단계에 접어들 것이라고는 생각도 안 했는데, 어느 날 갑작스럽게 두통이 찾아왔다. 하필 카페인을 섭취하지 않은 날이었다. 이를 본 동생이 말했다.

“환영해”

 

물론 커피를 두통약으로 먹지는 않는다. 이전에는 자주 마시지 않았던 덕분에 잠을 이기는 데에 효과가 컸고, 이후 몇 편의 영화를 하루에 몰아 봐야 하는 날에만 한 번씩 손을 대던 것이 어느 순간 ‘1일 1잔’이 되었다. 뭐, 잠이 올 것 같다면 극장에서 파는 콜라를 마시면 될 터였다. 게다가 좋은 영화를 보면 분비되는 엔돌핀이 두통을 막아줄 것이라 생각하며 시간 맞춰 극장에 도착했다. 그렇게 두 작품을 보고 나왔고, 마지막으로 예매한 작품은 취소하고 귀가했다. 두통이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3.

정말 중독된 걸까.

집에 도착해서도 두통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많이 본 ‘영화’가 아니라 ‘커피’에 중독된 것이라니. 오늘만큼은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 한 잔 만들었다. 저녁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렇게 잠시 식탁에 앉아 몇 모금 홀짝이며 취침 전까지 해야 할 것들을 생각했다. 동생이 방에서 나와 식탁에 마주 앉아 뭐하냐 물었다. 두통을 설명했고, 컵에 담긴 액체를 보곤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방에 들어갔다. 또 한 번 환영 인사를 받은 듯했다. 30분쯤 지났을까. 두통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망했다. 중독이 맞나 보다.

 

그러나 머리가 완전히 맑아진 것은 아니었다. 남은 두통이 있었고, 일을 대충 끝내고 침대로 기어 들어갔다. 그리고 새벽에 두통으로 잠을 설쳤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예전에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 바로 ‘체했을 때’. 엄지와 검지 사이를 눌러보았다. 두통의 원인이 ‘카페인’과 ‘소화 불량’ 모두로부터 발생한 듯했다.

 

4.

다음 날 아침.

다행히 두통은 다 나았다. 다시 손가락 사이를 눌러보았다. 이 고통 역시 사라졌다. 전날처럼 영화 때문에 바쁜 날은 아니었다. 아침 식사 후 마실 커피를 여유롭게 만들기 시작했다. ‘달고나 가루를 뿌린 라떼’를 만들며 문득 커피가 잔손이 많이 가는 음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어제 계획의 일부였던 이 라떼를 먹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소화 불량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먹은 것을 급하게 먹은 라면뿐이었는데······.

“잠깐, 어쩌면 나는 카페인 중독이 아닐지도 몰라.”

 

생각해보니 예전과 달리 음식을 급하게 먹으면 자주 체하기 시작한 것 같다. 뒤돌아서면 배고팠던 때의 소화 과정이 지금과 같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아침부터 영화를 보는 날 자주 머리가 아팠던 것 같다. 아침부터 영화를 본다는 것은 두 편 이상의 작품을 볼 가능성이 크고, 시간에 쫓겼을 가능성 역시 컸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침은 어떻게 먹었을까.

 

그때도 급하게 아침을 먹었을 것이다. 결국 아침에 먹은 라면이 문제였다. 커피를 만들어 마실 정도의 여유로운 시간이라면, 아침을 급하게 먹을 이유는 없었다. 중독은 없었다. 게으름과 초조함이 있었을 뿐.

 

그렇다면 예방은 하나다.

일찍 좀 자라. 제발.



 

 

by. 환야

 

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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