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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겸

뉴턴이 말했다

우리도 씁니다 2021. 10. 31.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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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물리학의 창시자 아이작 뉴턴은 어느 날 아침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good morning.”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 신년사에서 부동산 문제, 코로나 방역과 관련해서 많은 이야기를 한 뒤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감사합니다.”

 

 역사적 인물이나 공적 인물은 시대나 상황에 따라 그들의 의도와 다르게 소비된다. 세계를 바꾼 과학자이지만 영어를 쓰는 영국인이었던 뉴턴은 살다가 한 번 쯤은 아침 인사를 건넸을 것이다. 부동산이나 외교 능력에서 평가가 갈리기도 하지만 역대 대통령 중 임기 5년차 지지율이 가장 높은 문재인 대통령은 매순간 국정운영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도 평범한 사람들처럼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일상적인 언어를 구사하며 남은 임기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인물이나 공적 인물의 일상적인 언어는 회자되는 일이 잘 없다. 미디어에서 뉴턴이 등장할 때면 만유인력이나 중력 같은 업적과 관계된 말과 행동을 인용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예를 들면 떨어지는 사과를 보면서 중력을 발견했다는 일화나 “나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서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는 말을 불러내어 뉴턴의 업적을 설명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등장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부동산 정책의 실패에 대한 기사에서는 종종 문재인 대통령의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는 호언을 집값 상승 그래프 옆에 나란히 배치한다. 

 

 역사적 인물과 공적 인물의 의도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 태도의 문제는 그들의 삶을 왜곡한다는 데에 있다. 삶을 멋대로 해석하는 태도는 공적 인물보다 역사적 인물의 경우에 더 치명적이다. 이 차이는 공적 인물과 역사적 인물의 결정적 차이인 죽음에서 나온다. 역사적 인물은 공적 인물과 달리 변명을 할 능력이 없다.

 산 사람들은 종종 변명할 수 없는 그들의 상황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곤 한다. 예를 들어 <인생은 아름다워>, <피아니스트>,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같은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들은 유대인에 대한 ‘피해자’라는 일관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 이미지를 통해 홀로코스트에서 희생당한 유대인 지도자들이 이득을 본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유대인들이 순진한 피해자일 뿐이라는 이미지는 잘못되었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다른 유대인들을 설득해서 효율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다. 어차피 희망은 없으니 저항하다 더 비참한 일을 당하지 말자는 논리였다. 지도자들은 유대인들이 스스로 무덤을 파고 들어가게 했다. 덕분에 독일군은 힘들게 땅을 파고 유대인을 그 안으로 밀어넣는 과정 없이 수륙탄을 무덤 안에 던지는 것만으로 유대인을 학살할 수 있었다.

 또한 전쟁에 참여하지도 않은 유대인이 설립한 단체들은 만들어진 유대인의 이미지로 이득을 본다. 노르만 핀켈슈타인이 <홀로코스트 산업>에서 비판하듯이 전쟁에 참여하지도, 피해자가 되지도 않은 미국의 유대인 단체들이 유대인들의 순교자 이미지를 이용하여 모금 활동을 하고 홀로코스트를 산업화했다.

 

 죽은 사람을 자신의 상황에 맞추어 멋대로 불러 오는 일은 지금도 흔하다. 요즘 한국에서 가장 큰 정치 이벤트인 대선을 앞두고 포털이 대선 후보들로 뒤덮였다. 후보들은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해 죽은 대통령들을 끄집어 낸다. 보수당은 박정희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하고 진보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한다. 

 박정희 대통령 생가 앞에서 극우 세력들과 갈등을 보이는 후보들, 당신은 노무현 정신이 없다며 서로를 헐뜯는 후보들을 보면서 눈살이 찌푸려진다. 죽은 사람이 말할 수 있었다면 저럴 수 있었을까.

 죽은 사람이든 살아있는 사람이든 그들의 삶을 멋대로 해석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죽은 사람의 경우 말할 능력을 잃어버린 그들의 처지를 이용하지 말고 조심해서 그들을 인용해야 한다.

 

 

 

by. 김도겸

 

 

김도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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