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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씁니다
어느 날 아침 못 보던 2인용 유아 자전거 하나가 아파트 복도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며칠 전 밖에서 들리는 이사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던 것 같다. 자전거는 이삿짐들 중 하나일 터였다. 엘리베이터 근처에 놓인 그 자전거는 나를 포함한 같은 층 주민들의 통행을 방해할 만큼 크거나 존재감을 표출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복도라는 공용 공간에 개인의 물건을 둔다는 것이 그리 바람직해 보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물론 피치 못 할 사정이 있을 수도 있고, 말한 것처럼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기에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 게 더 나을 수 있다.(가연성 물질이 아니기에 법적인 접근이 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인정한다. 그러나 도난방지도 안 한 채로 자전거를 세워 둔다는 점이 적잖이 신경 쓰였다..
장마였다. 올해 장마는 특히 길었다고 한다. 게다가 기억나는 태풍의 이름만 세 개 정도이니 단순히 긴 장마가 아니었다. 그리고 하필 그 시기에 촬영이 있었다. 덕분에 체감상 그 기간은 더욱 대단하게 느껴졌다. 8월이 시작되면 세찬 비까지 내리지는 않을 거라 감히 예상했고, 주간 일기 예보에 뜬 먹구름들은 예측하기 힘든 시기에 대한 기상청의 귀찮음을 대변한다고 여겼다. 그리고 촬영 일주일 전, 비가 계속 올 거라는 일기 예보를 보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그때 되면 안 오겠지.” 테스트 촬영을 위해 모인 스태프들은 서로 이렇게 위로했다. 아니, 나를 위로했다. 나도 웃으며 맞장구를 쳤지만, 첫 연출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연출이었고, 졸업 영화라는 타이틀은 ‘될 대로 되..
8시에 과외가 있었다. 장소는 ‘스터디 카페’ 안에 있는 ‘스터디 룸’이고, 정각이었지만 학생은 도착 전이었다. 늘 5분 이상 기다리는 게 일상이었기에, 화이트보드 위치를 조정하고 앉아서 내일 일정표를 점검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학생일 터였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네’라고 답했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은 스터디 카페의 주인이었다. 뭔가 작은 문제가 생긴 것을 직감했고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물음을 대신했다. ‘유감이다’라는 단어가 도드라진 표정과 함께 그는 예약한 시간이 변경된 것 같다고 말했다. 직감이 맞았다. 동시에 전날부터 시작된 방역 2단계에 포함된 사업장 수칙이 머리에 스쳤다. 학생 쪽에서 예약을 취소했거나 다른 날로 예약 시간을 변경한 것이었다. 생각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