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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G와 R[12월 : 비에 대하여]

우리도 씁니다 2020. 12. 30.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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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Z

{G와 R}

 

1.1

G는 왕이다. 지구 껍데기 위의 모두가 G의 식민지다.

G는 위에서 아래로 우리를 짓눌러 위와 아래를 가르치고 예의를 알려준다. 꾸준하고 한결같다. 어제보다 강하거나 내일 약해지지 않는다. 왕 때문에 핸드폰을 얼굴에 떨어뜨리고, 왕 덕분에 컵에 커피를 따를 수 있으며, 왕 덕분에 둥근 지구에서 ‘자꾸 걸어나가’도 떨어지지 않고 외국인을 만날 수 있다. G, 우리의 왕, 이것을 막을 방법도, 피할 땅도 없다. 이것은 약속이다.

 

1.2

수평선에서 배가 사라지는 것, 개기월식, 개기일식을 보고

몇몇 영민한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걸 눈치챘다. 하지만 왜 사람들이 떨어지지 않는지는 알지 못했다. 윌리엄 길버트(William Gilbert)는 자석을 떠올렸다. 달과 지구, 지구와 태양이 서로 끌어당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과학자들은 이 아이디어를 외면했다. 케플러만 예외였다. 길버트에게 영향을 받은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는 바보같이, 외롭게, 계산의 세계로 파고들었고 화성이 태양과 가까울 땐 빠르게 돌고 멀수록 느리게 움직인다는 것을 증명했다. ‘타원 궤도의 법칙’이었다. 태양의 잡아당기는 힘과 행성의 벗어나려는 힘의 균형이 타원 모양의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었다.

 

에드먼드 헬리가 뉴턴의 집을 방문했을 때

뉴턴의 풀이법을 보고 감탄했다. 뉴턴은 이미 알고 있었다. 뉴턴은 우리의 왕, G를 그렸다. 물감이 아니라 숫자와 문자로. 헬리가 간청했다. 책으로 내셔야 한다고. 하지만 뉴턴은 관심 없었다.

 

뉴턴이 밝혀낸 G는 자석이 아니었다.

사과도 좋고 태양도 좋다. 누구든 질량만 가진다면 서로 끌어당긴다. 질량이 클수록, 거리가 가까울수록, 끌어당기는 힘은 강해진다. 이것이 우리의 왕, G의 본질이었다. 뉴턴이 자신의 계산을 세상에 알렸을 때 누군가 말했다. 다른 도움 없이 하나의 물체가 다른 하나의 물체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지만 뉴턴은 그를 이해했다. 자신도 이 사실이 어이가 없었으니까.

 

 

 

 

G법칙

 

 

2.1

G는 왕이다. 지구 껍데기 위 모두가 이것의 식민지다.

하지만 새가 잠깐 날듯 물은 이것을 거스를 수 있다. 태양 덕분이다. 태양은 역모를 꾀하는 권력자다. 태양은 바닷물을 살살 꼬드기고 물을 위로 퍼올린다. 바닷물은 이때 왕(G)을 거스르고 바다의 흰 거품이 하늘의 거품이 된다. 또 다른 바다가 복사되는 셈이다. 이 현상은 역모, 그러니까 바닷물이 G로부터 독립했다는 증거가 되고 결국 R의 시작이 된다.

 

 

 

2.2

육지의 온도가 바다보다 뜨거워지면

육지의 공기는 상승하고 바다의 차고 습한 공기는 드디어 자리가 났다는 듯 육지로 돌진한다. 이때 바닷바람은 태양에 의해 위로 올라가 있는 수증기를 잡고 육지에 있는 산맥으로 돌진한다. 산맥에 부딪친 습한 바람은 산을 타고 올라간다. 높이 올라간 바람 속 물방울의 엉덩이가 무거워진다. R이 시작된다. 돌아온 탕자처럼, 실패한 역모의 주동자처럼 G에게 돌아간다. 하늘의 되새김질처럼 보이는 이 현상을 사람들은 R이라 부른다. R은 G의 똘마니다. G는 R없이 존재할 수 있지만 G없이 R은 존재할 수 없다.

 

2.3

아침 하늘은 음울하지 않았다. 타는 듯이 더웠다.

햇빛을 푸짐하게 받으며 벌을 서고 있는, 손을 높게 든 나무와 아직 은퇴하지 않은 매미들, 스케이트를 들고 그늘에 선 아이, 양산을 쓴 어머니, 먹빛으로 끓는 아스팔트가 있었다.

 

오늘이라고 했다. 오늘, 여기라고 했다.

어느 순간 소리 없이 태양이 축축해지기 시작하더니, 부서질 것 같지 않던 햇빛 웅덩이가 깨진다. 공기가 달콤해지기 시작하더니, 물이 하나 둘, 하나 둘, 떨어진다. 기상 캐스터가 이겼다. 이제 제사장은 필요 없다.

 

‘아, 우산 없는데’ 누군가 말한다.

비릿한 바람이 불고 커튼이 베란다 창틀을 때린다. 카페 주인은 차양을 치기 시작하고 까마귀와 사람들이 빨라진다. 오래 산 나무들이 서로를 채찍질하고 두꺼워진 구름 한 장, 한 장이 스스로를 쥐어짜낸다. R의 시작이다. 퍼붓는다. 씩씩하게 떨어진다. 7월의 약속처럼, 여름 손님의 박수갈채처럼.

 

꽃은 대가리를 맞아 고개를 꾸벅거리고 강이 거칠어진다.

끈적해진 흙이 무거운 향기를, 지렁이를 토해낸다. 강은 임신하듯 불어난다. R이 흰 자동차를, 시장의 딸기를, 노란색 건설 장비를 때리고 아스팔트에 윤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이때 아스팔트는 바다에서 막 나온 검은 물개 같다. 서늘해진 낮, 광화문의 모든 벽돌이 짙어지고 충무공은 까만 눈물을 흘린다. SNS에선 R 해시태그와 우산 사진으로 홍수를 이룬다.

 

 

 

 

 

 

 

by. 얼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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