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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겸

널 사랑하겠어

우리도 씁니다 2020. 11. 27.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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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 있는 사람을 사랑해본 적 있나요. 언젠가 한 친구는 애인이 있는 사람이라면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저도 그렇습니다.

 알랭 드 보통은 우리가 어떤 사람을 충분히 알기도 전에 사랑에 빠진다고 합니다(‘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맞습니다. 연애를 시작하면 언제나 썸탈 때까지는 보이지 않던 게 보이고, 봤던 것도 다르게 보입니다. 연애 초반에는 그런 면이 좋다가, 나중에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싫증이 납니다.

 그런데 저와 제 친구는 그 사람에게 애인이 없는지를 확인해야 사랑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둘의 생각과 보통의 생각이 부딪히지는 않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얻기 전에 사랑에 빠지지만, 적어도 애인이 있는지는 알아야 사랑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 찜찜하지 않나요. 사랑은 우리 눈을 멀게 하고 바보로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우리는 다치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다리를 두들겨서사랑에 도달하려고 하는 모양이니까요. 혹시 조심하는 마음이 사랑으로 다치는 게 무서운, 용기 없는 마음은 아닐까 불안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앤소니 기든스는 <현대 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에서 흥미로운 주장을 합니다. 인간은 과거에 묶여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누군가와 다툴 때 “나원래 그래!”라고 하는 사람을 종종 봅니다. 때로는 “나 트라우마가 있어.”라거나, “전에 안 좋은 꼴을 봤더니 더는 그 일을 시도하고 싶지 않아.”라는 표현으로바뀌기도 합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에게 일어난 사건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나는 바뀔 수 없어.

 이런 사람을 만나면 힘이 풀립니다. 물론 내 마음이 전부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아요. 하지만 성격과 삶을 과거의 사건으로 규정해버리는 사람과는 협상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협상은 ‘너의 어떤 성격이나 말투가 나에게는 상처를 주니 바꿔줘’를 주제로 합니다. 물론 기든스는 우리의 마음은 과거에묶여서 바꿀 수 없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기든스는 정신분석학과 사회학을 통한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근거를 듭니다. 저는 저의 성격을 바꿨던 몇 번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니 복잡한 설명이 없어도 능동적으로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이제 기든스는 현대사회의 사랑이 ‘민주주의로서의 친밀성’의 모습을 띄고 있고 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말이 조금 어려운가요. 쉽게 말해서협상입니다. 협상의 주제는 위에서 말한 ‘성격과 말투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이고 논거는 감정입니다. 하지만 이 감정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가는 다시 이성의 몫입니다.

 멀리까지 왔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기든스의 관점에서 보면 저와 제 친구는 애인 있는 사람을 협상의 대상으로 삼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인가’하는 질문은 ‘어떤 사람과 협상을 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입니다. 사랑에 빠지기 전은 협상도 시작하기 전이라 우리의 감정은 날 것 그대로입니다. 그렇다면 상대방이 애인이 있든 없든, 더 나아가 남편이 있든 없든 그 사람과 관계를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래야 내 감정에 솔직한 것일 테니까요.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사실 다른 사람과 사랑을 시작하기 전이라도 우리의 감정은 날 것 그대로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는평생 스스로를 사랑하기도 해야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나 관계가 나에게 상처를 준다면, 그 사람에게 끌리는 마음을 통제하도록 스스로를 설득할 수도 있겠지요.

물론 그 관계에서 얻는 상처보다 만족감이 더 크다면 용기를 내는 방향으로 스스로를 설득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때 기든스는 딱 한 가지 가능성에 대해서만 더 생각해보고 결정하라고 할 것입니다. 바로 공의존입니다. 공의존은 어떤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의 관계에 의존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사람이 나에게 의존한다는 사실에 의존하는 거예요. 누군가 당신을 필요로 한다면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나요? 이게 바로 공의존입니다.

 안타깝게도 공의존은 파멸적인 상황에 주로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알코올 중독자의 배우자가 쉽게 이혼을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법정에 나와 가해자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는 이유로 종종 공의존이 언급됩니다. 끊어내야 하는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는 상황은 분명 파멸입니다.

 애인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파멸이라고 설득할 필요는 없겠지요. 이 사랑을 관계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순간 파멸은 설명할 필요 없이 명확해집니다. 애인이 있는 사람이 단지 전 애인과의 관계에서 채워지지 않는 욕구가 있고 이를 채우기 위해 나와 관계를 맺는다면 그나마 괜찮은 상황입니다. 애인 또는 애인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세계에서 겪는 괴로움을 끊지 못하는 사람이 나에게 의존하는 상황이라면 나는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버릴 겁니다. 이런 관계는 분명내 정신을 건강하지 않게 만들 겁니다. 바로 공의존의 시작입니다.

 

 어떤 사람은 현대인이 쉽게 켜고 끌 수 있는 사랑을 한다며 혀를 끌끌 찹니다. 상대를 만나는 순간 귀에 종소리가 들리고 불완전한 세상이 완전해지는 낭만적사랑을 염두에 둔 말일 겁니다. 그 사람은 분명 그런 사랑을 경험해 봤을 테니 안타까운 마음에 하는 말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이전에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을 뿐입니다. 더욱이 이 과정이 쉬운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랑을 할지 능동적으로 고민한 결과입니다.

 

엔소니 기든스, <현대 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 배은경・황정미 옮김, 새물결 출판사, 2001

 

 

 

 

by. 김도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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