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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겸

질문1

우리도 씁니다 2020. 11. 20.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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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 돋친 존댓말이 오갔다.

 나는 팀 발표의 Q&A 시간에 자주 질문을 한다. 그날도 발표에서 미흡한 점을 지적하며, 근거로 삼은 표에 대해 질문했다. 발표자는 붉어진 얼굴로 대답했지만 부족했다. 나는 다시 질문했다. 강의실 안 80명을 침묵시킨 나의 질문을 교수가 중단시켰다. 교수는 다음 발표로 넘어가기 전 쉬는 시간을 줬다.

 쉬는 시간에 방어 기제가 작동했다.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이상한 것은 내 질문을 공격으로 받아들인 발표자였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다른 일을 하다가도 화가 난 발표자의 얼굴과 목소리가 자꾸 떠올랐다.

 일주일이 지나 발표가 있었던 수업이 다시 돌아왔다. 아무렇지 않은 척 강의실로 들어가서 수업 준비를 했다. 친구 한 명이 내게 다가와 오늘 자신의 발표 때는 질문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알겠어. 웃으면서 대답했지만 생각이 많아졌다.

 학교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진리를 추구한다고 누가 내게 가르쳐 줬나? 누군가는 학교에 학위증을 따러, 누군가는 양질의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러, 누군가는 부모님의 강요로 학교에 온다. “대학은… 학생, 교수, 총장, 이사장이 적당히 모여 있는 집단일 뿐이다.”1) 모두 제각각의 이유로 학교에 온다.

 발표를 했던 학생이 어떤 목적으로 학교를 다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학생이 학교에 왔으면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고 단정하고 질문했다.

 소크라테스도 나처럼 질문과 논쟁을 좋아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나와 달리 자신의 지혜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아는 지혜로운 철학자였다. 나는 어떻게든 내가 아는 것을 써먹고 싶어 한 마디라도 뱉으려고 하는 오만한 학생이었다. 친구들은 그런 나에게 ‘지적허영심’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발표 때 내가 보여준 오만에 대한 보상으로.

 

 그렇지만 침묵할 수는 없다.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역설한 토론의 중요성은 질문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질문은 독단을 경계할 수 있다. 합리적인 설명이 부족했던 부분을 짚어내고 주장을 탄탄하게 말들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오류 속에 진리가 있을 수 있듯, 전체적으로 옳은 주장 속에도 빈약한 논리가 있을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승자독식을 더욱 공고히 만들었다. 이전에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었다면, 이제는 1등만 살아남는 살벌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질문은 뒷전이다. 1등을 못 하면 죽을 판에 질문 같은 거, 할 여유 없다. 그나마 성장과 관련이 있는 질문은 필요에 의해 생산되기라도 하지, 성장과 관련 없는 질문은 눈총을 맞고 피 흘리며 쓰러졌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살아남는’다는 은유다. 우리나라가 역성장을 한다고 해도 갑자기 굶어죽는 사람이 대량으로 생기지는 않는다. 1등을 하지 않아도 살아남을 수 있다. 은유의 원관념은 ‘잘 살다’이다. 1등을 해야만 잘 산다는 믿음이 ‘승자독식’이라는 표현에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경제적 풍요가 ‘잘 산다’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닐뿐더러, 충분조건도 아니다. 내가 가치를 두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봐야 한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믿고 있지는 않은지 물어봐야 한다. 내가 가치를 두지 않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고, 거짓을 진실이라고 믿는 삶을 좋은 삶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질문과 대답은 작용과 반작용의 관계라서 질문이 있으면 반드시 대답이 생긴다. 대학에 질문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질문이 있어야 한다.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부유한 삶을 누리고 있다. 지금은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되기 쉬운 시대다. 과체중 돼지는 비싼 값에 팔릴 뿐이다.

 

 

1) P.274,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서현, 효형출판

 

 

 

 

 

by. 김도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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