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편지 (3)
우리도 씁니다
음, 왜냐고? 그러게. 왜지? 세상에는 예쁜 사람이 많으니까 예쁘다는 이유가 되지 않아. ‘예쁘다’는 정량적인 개념이 아니니까. 누구는 100만큼 예쁘고, 누구는 50만큼 예쁘다고 말하는 사람은 ‘예쁘다’를 잘못 사용하고 있는 거야. 500g과 200km 중에 뭐가 더 예쁘다고 대답할 수 없듯이 ‘예쁘다’는 정성적인 개념이야. 양적인 차이라기 보다는 질적인 차이라고. 내 눈에는 500g과 200km가 모두 예뻐 보이는 걸. 아니야 미안해. 등은 돌리지 마. 하지만 여전히 너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말할 수는 없어. 그렇게 말하는 순간 다른 사람들은 어느 정도 못생긴 사람이 되어 버리잖아. 나는 사랑에게 칼을 쥐어주고 싶지 않아. 너를 볼 때 설레기는 하냐고? 당연하지. 하지만 너를 보는 모든 순간 설레..
답장이 늦었어. 4년 전부터 서로 많은 대화가 있어왔고, 그만큼 쓸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알맞은 내용을 고르느라 늦었다는, 이런 변명을 이해해줘. 그리고 생각을 정리하고 이야기해 볼 기회를 만들어줘서 고마워. 두괄식 표현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까지 가장 정답에 가깝다고 생각해온 게 있어. 우리가 처음 대화했을 때 언급한 ‘이동진’ 영화 평론가의 블로그에 장식된 말이기도 해. ‘하루하루 성실히,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계획적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후회와 동행하는 횟수를 줄여줬거든. 무작정 시작한 걷기가 탄력을 받아 달림으로 발전하는 게 좋았어. 하지만 어느 지점에서는 방향을 몰라 길을 잃고 그저 고생으로 끝나버려 후회로 남았던 게 사실이야. 그래서 잠시 멈추고 뒤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
2018.09.XX 늦은 답장을 써보려한다. 이제서야. 그래보려 한다. 헤아려보니, 달을 넘기고도 보름 즈음이 더 지났다. 네 편지를 받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굳이 바빴다거나, 그래서 겨를이 없었거나 하는 핑계를 댈 생각은 없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저 ‘답장을 쓸 수 없는 마음만이 가득 차 있는 시간을 보냈다.’ 라는 말 뿐이다.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질량을 품은 듯 무거운 펜은 편지지 위에 단 한 획조차 써 내리지 못하게 했다. 획이 더해질수록 펜의 무게보다 더한 중력이 내 마음을 짓누를까 두려웠던 것 같다. 겨우 막아놓은 댐이 무너지듯, 한 획 한 획에 굉음을 내며 무너질 슬픔이 두려웠다. 한번 터진 슬픔은 도저히 통제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