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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씁니다
그녀가 허리를 숙였을 때 마스크 틈으로 그녀의 코와 입술이 보였다. 넋 놓고 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서둘러 눈을 돌린다. 눈동자가 한 바퀴를 돌아 그녀에게 향했을 때,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들켰다.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당연히 도망쳤지. 훔쳐보다 걸리면 종신형인 거 몰라?” 당황해서 눈이 마주친 채로 1초 동안 그대로 있었다. 아주 위험하고 바보같은 짓이었다. 내가 훔쳐봤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었다. 머리 위에서 종소리가 울리고 문이 열렸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문 밖으로 뛰었다. 내가 내려야 할 역까지는 아직 더 가야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나는 범죄 현장을 벗어났다. 시퍼런 피가 묻은 손을 닦아야 하지만 적어도 현행범 체포는 면했다. 그런데 이런 중대한 범죄를 ..
♬OST: 김광민 - 작은 배 1. “나 왜 사랑해?” 전기장판을 틀면서 내가 물었다. “음...널 사랑하는데 이유가 어딨어.” 그녀가 대답했다. 이번엔 그녀가 질문했다. “넌 날 왜 사랑하는데? ” 2. 누군가 ‘자신을 왜 사랑하냐’고 물을 때, 대부분은 잠깐 당황한다. 당황한 사람은 청문회의 어벙한 장관 후보자처럼 어눌하게 뜸을 들이고, 물었던 사람의 눈동자는 어서 말해 보라며 무언(無言). 답할 사람은 클리셰(Cliché)를 사용할지, 독특한 답을 할지, 거짓의 성벽으로 사랑의 땅을 보호할지, 지금 생각한 답이 뒷감당을 할 수 있을지를 계산하고, 의문만 키우는 신중한 침묵이 너무 길지 않을까 걱정한다. 침묵은 배신이니까. 3. 순간 수 많은 선택지들이 눈 앞에 보인다. “인간성이 참 마음에 들어.”..
박은 키가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무심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유머러스하다. 그래서 과에서 인기가 많았다. 그런데 바로 그 무심한 성격 때문에자신을 향한 호감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호감을 표현하지도 못했다. 나와 전은 옆에서 답답해하며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기도 했지만 박은 알아들은 체 하고는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번도 연애를 해보지 못 한 채로 두 학년을 다니고 박은 군대를 가버렸다. 그 뒤를 따라서 전과 내가 순서대로 입대했다. 2010년 2월 내가 셋 중에 마지막으로 제대하고 캠퍼스를 찾았을 때, 박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전의 설명에 따르면 박은 제대하고 스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녀를 만났다. 둘은 리프트 아래에서 리프트 이용권을 검사했다. 10시간 가까이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