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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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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던 어느 날, 뉴스에서 우리나라 인구가 5천만이라는 말을 흘러나왔다. 틀렸다. 사회시간에 분명 4천8백만이라고 했다. 아빠에게 물었다. 금방 2백만이 늘어난 것이냐고. 아빠는 ‘둘다 5천만이야.’라고 대답했다. 그 말투는 퉁명스럽거나, 냉소적이진 않았고 따뜻한 뉘앙스에 가까웠지만, 의문이 해결될 정도의 정보를 담고있지는 않았다. 4천 8백만이 어떻게 5천과 같지. 어른들의 숫자에선 2백만 정도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것인가. 작은 수는 아무 의미 없는 것인가. 그 당시에는 다른 감정이 없는 ‘궁금함’뿐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영화를 보다 낯선 단어에 귀가 닿았다. 타짜2에서 주인공 대길이가 일명 ‘탄’을 맞는 장면이었다. 대길이는 판에서 진 댓가로 9억9천8백40만원을 물게 되었다. 귀를 끈 단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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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희 – 취했네 https://www.youtube.com/watch?v=bhaK9JQsn-o – 들으며 읽어주세요.] -띵 ‘다드ㄹ잘 들ㅇㅓ갓ㄴㅑ’ 양 팔을 친구들에게 붙잡혀 끌려다니다, 결국은 택시에 태워져 집에 들어간 녀석에게 제일 먼저연락이 왔다. 동행을 하나 붙여놨으니 집에는 들어가겠지 싶었는데 되려 받은 걱정에 웃음이 났다. 누구 하나 예외없이, 한겨울 동네 꼬마들 같이 얼굴이 발그레하다. 주말 저녁에 간신히 허락되는 여유에 급하게 들이부은 잔들 때문이긴 하지만, 매일을 함께 보내던 대학시절이 저물고 거진 일년 만에 만난 반가움이 벌겋게 드러난 것이기도 했다. 벌개진 얼굴들을, 거진 감긴 눈으로 바라보다 자리를 파했다. 동기들과, 선배들과 하루가 멀게 드나들던 술집이 낯설게 느껴진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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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폰을 두고 나왔다. 걸음을 멈추고 감은 두 눈 앞엔, 책상 오른편 이어폰의 자리가 또렷이 그려진다. 다시 되돌아가기도, 무시하고 가기도 애매한 거리. 다이소에 걸린 이어폰 위에 5천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어있다. 5천원이면 하루종일 귀가 허전할 것을 면할 값으로 나쁘지 않다는 생각으로 한참을 들여다보다, 책상위에서 모처럼 만의 휴무를 누릴 놈의 금액이 이번달에 빠져나간 돈이란 생각이 들어 시선과 마음을 한번에 접었다. 덕분에 오늘 내 휴대폰은 작은 무성영화관이 되었다. 소리없는 영상들을 상영해야했으니까. 평소처럼 sns앱을 켠다. 오래 지나지 않아, 휴대폰을 바라보는 스스로에게 생경한 기분을 느꼈다. 무언가 어제와 달랐다. 어제까진 모든 신경이 휴대폰에 집중되어, 바깥 세상이 어떠했는지는 관심을 가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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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야경을 좋아한다. 이것이 남들과 다른, 특이한 취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남산, 북악 스카이웨이 등 고도가 조금 높은 곳들은 주로 밤거리의 내부자가 아닌 외부자로서, 네온과 자동차 전조등, 건물의 등과 같은 불빛들을 관조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어둠 속에서 태어난 빛은 소리를 가지고 있다. 빛이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모이고, 사람들은 소리를 만든다. 사람이 내는 소리와 사람이 만드는 온갖 소리들로, 밝은 곳은 침묵할 줄 모른다. 침묵은 살아있는 것들의 성질이 아니다. 살아있는 것들은 크고 작은 소리들을 만든다. 살아있는 것들이 침묵할 때는, 소멸을 불사하더라도 던지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이다. 우리가 살아있는 것들의 침묵에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할 당위이기도 하다. 큰 소리의 농성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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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성실하다.’ 생각이 들었다. 소일거리를 하며 시간에 쫓기지 않는 하루를 보냈던 비 내리는 날, 문득 든 생각이다. 비는 내리는 양에 맞는 소리를 낸다. 소심하게 자신에게 걸맞은 소리를 못 내지도, 위상을 드러내려는 듯한 과장을 하지도 않는다. 제 분수를 지키며, 자기의 소리를 내는 것들은 성실한 것들이다. 창을 열고 그 소리를 직접 들으며 내리는 양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귀를 기울이고 창밖에서부터 들리는 그 소리를 듣는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며 든 여러 단상들이다. 1. 비와의 대조 우리는 보통 앞으로 나아간다. ‘나 갈게!’라 말하며 굳이 방향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앞으로’를 전제한다. 혹 뒤로 가게 되면, 그런 예외 상황이 생겼을 때가 되어야, 방향을 이야기한다. 잠시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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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시작은 ‘동경’이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동경은 두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데, 각각은 다음과 같다. 동경(憧憬) · (명) 어떤 것을 간절히 그리워하여 그것만을 생각함. · (명) 마음이 스스로 들떠서 안정되지 아니함. 나의 마음은 2번에서 1번으로 흘러갔다. 모든 마음을 빼앗겨, 내 힘으로는 그것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일을 할 때에도, 누군가를 만나고 있는 순간에도, 잠이 쏟아져서 더 이상은 눈꺼풀의 무게를 견딜 수 없을 때를 제외한 모든 시간에 내 마음은 그 곳에 가 있었다. 그 곳을 ‘음악’이라고 이야기해왔다. 유순한 성격 덕에 좋아라 했던 중학교 친구를 다시 만난 20살에 그 친구가 만든 노래를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그 위상이 갑자기 ‘동경의 대상’이 된 내 친구는 하고 싶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