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씁니다

헤아릴, 살필 고(考) 본문

전규섭

헤아릴, 살필 고(考)

우리도 씁니다 2021. 2. 19. 12:03
728x90

 

 

부대에 전입한지 오래지 않았을 때, 불침번 관련 교육을 받았다. 시간만 때우지 말고 성실히 경계근무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더불어 타 중대에서 취침 시간에 손목을 그은 대원 이야기가 나왔다.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오래도록 나오지 않아 불침번 대원이 확인을 했고, 그 덕에 큰일을 치르지 않고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해당 대원에게 특별 외박을 줘야 한다, 훌륭한 대원이다. 칭찬이 한동안 마르지 않았다. 

이야기는 그 뿐이었다. 잠을 못 이루고, 사람들의 의식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밤시간을 기다려, 날카로운 것과 혼자만의 공간을 찾아야했던 대원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무엇이 그를 삶에서 소외되게 만들었는지,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낫다는 이승을 포기하게 하였는지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불침번 대원을 칭찬하는 말들 속에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대원이 관심 병사였을 것이고, 손이 많이 가는 대원이었을 것이라는 뉘앙스가 들리는 듯했다. 더불어, 그 불침번 대원에게 혜택을 줘야한다는 이유에는 해당 중대장이 큰 책임을 면했다는 데에 있었다. 

공감 능력은 지적 영역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자신은 이성적이라,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말을 부끄럼 없이 하는 이들도, 자신의 지적 능력이 떨어져서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 말하는 것은 부끄러워한다. 타인의 감정을 고려하고, 내가 그의 처지였다면 어떤 마음이었을지 상상하는 것. 공감을 가능케 하는 것은 지적인 이해에서 기반을 둔다. 자살시도자에 대한 공감이 없는, 불침번 대원에 대한 치켜세움에 공연히 골이 났다. 

부대 배치 이전, 훈련소에서 자살예방교육을 받았다. 제한된 교육 시간에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없다 치더라도, 자살을 시도하는 주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자살 시도를 막는 방법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물론 중요한 이야기이다. 교육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이 마지막 순간의 외침에 대한 경청, 한 마디의 설득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나도 삶을 유지하는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면,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나을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인생이 얼마나 분한지, 아픈지, 외로운지에 관심이 없고 타의로 붙여놓은 숨이 단순히 모두에게 최선일 것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함께 했던 직원은 대원들에 대한 인격적인 처우보다, 자신의 인사고과(人事考課)를 더 신경 쓰던 편이었다. 밥그릇을 가슴팍까지 끌어당겨 혹여나 손해를 볼까 경계하는 그와, 복무기간의 대부분을 함께 했다. 부대 내, 여전히 행해지는 부조리들에 대해 큰 목소리로 저항하진 못했지만, 그의 생각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거듭 곱씹었다. 나의 1년 8개월을 둘러싼 관료주의의 암막이 정의의 밝은 빛을 가릴지라도, 내게 주어지는 가스등(gaslight)1)의 광량이 충분하지 않음은 잊지 않으려 저항했다. 전역 후 시간에 닳아 사라지리라 생각했던 기억들이 또렷한 이유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어둠을 밝히는 것은 정의의 빛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물론, 고과 때문이든 생명을 사랑하기 때문이든 살아있다는 것의 소중함을 돌아보게 하고, 삶으로 다시 초대하는 일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결과만큼 중요한 것이 과정이기에 이기적 동기는 말그대로 이기적일 뿐이라는 사실을 면할 수 없다. 그것은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의 살핌(考)극단적 선택을 하기까지의 삶의 무게와 고민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의 일상이 회복되는 시점까지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인사고과(人事考課)에서 고과(考課)는 업무능력을 ‘관찰하고(考) 점수 매기는(課)’라는 제도를 의미한다. 결과에만 눈이 묶여, 과정에서 사람을 ‘헤아리고 살피는’(考) 일을 놓치는 실수는 하지 말아야겠다. 

 


1)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로, <가스등(Gas Light)>(1938)이란 연극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연극에서 남편은 집안의 가스등을 일부러 어둡게 만들고는 부인이 집안이 어두워졌다고 말하면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아내를 탓한다. 이에 아내는 점차 자신의 현실인지능력을 의심하면서 판단력이 흐려지고, 남편에게 의존하게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가스라이팅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by. 전규섭

 

 

전규섭

인스타 : @thankyusup 

유튜브 : https://www.youtube.com/channel/UCYs0cUvMv2H5kUqTrzXKLwg

브런치 : https://brunch.co.kr/@thankyusup

블로그 : https://blog.naver.com/jeon1606

 

 

우리도 씁니다.

인스타 @ussm._.nida

블로그 https://blog.naver.com/ussm2020

티스토리 https://wewritetoo.tistory.com

'전규섭' 카테고리의 다른 글

  (0) 2021.03.18
가난  (0) 2021.03.08
우수리  (0) 2021.02.10
취했네 [1월 : 술에 대하여]  (0) 2021.02.01
살해된 오감의 일부  (0) 2021.01.2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