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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씁니다
내가 사는 안암에서 한양대학교까지 자전거를 탈 때 크게 세 가지의 길이 있다. 나는 그중에서 청계천을 따라가는 길을 가장 좋아한다. 나는 이 길을 청계천 하이웨이라고 부른다. 청계천 하이웨이는 자전거 전용도로다. 뒤에 있는 자동차가 클랙슨을 울릴까 봐 빨리 달릴 필요가 없다. 그리고 하이웨이답게 신호등이 없다. 한번 받은 신호를 계속 받으려고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된다. 초가을 아침 청계천 하이웨이는 모든 것의 경계가 뚜렷해진다. 듬성듬성 군락을 이룬 갈대는 검은색 테두리라도 있는 것처럼 그 뒤의 청계천과 구분된다. 청계천 하이웨이 위로 펼쳐진 고가도로 사이로 비치는 햇빛은 밝음과 어두움을 칼로 베어버린다. 고가도로가 구름 걷히듯 사라지면 학교에 거의 다 온 것이다. 이제 경계는 햇빛 속으로 사라진다. ..
애인 있는 사람을 사랑해본 적 있나요. 언젠가 한 친구는 애인이 있는 사람이라면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저도 그렇습니다. 알랭 드 보통은 우리가 어떤 사람을 충분히 알기도 전에 사랑에 빠진다고 합니다(‘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맞습니다. 연애를 시작하면 언제나 썸탈 때까지는 보이지 않던 게 보이고, 봤던 것도 다르게 보입니다. 연애 초반에는 그런 면이 좋다가, 나중에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싫증이 납니다. 그런데 저와 제 친구는 그 사람에게 애인이 없는지를 확인해야 사랑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둘의 생각과 보통의 생각이 부딪히지는 않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얻기 전에 사랑에 빠지지만, 적어도 애인이 있는지는 알아야 사랑에..
1. 책을 좋아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성인이 된 후, 그러니까 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그리고 제대로 책 한 권을 완독했다. 교복을 입었을 땐 뭐 했냐고? 독후감은 인터넷에서 긁어와서 완성했고 점심시간에 책을 읽는 사람이 ‘쿨’ 하지 못하다 생각했다. 그리고 당연히 책은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컴퓨터가 고장이 났다. 남은 건 핸드폰 뿐이었고 기사를 보다가 영화 평론가가 추천해 주는 책에 대한 글을 봤다. 천명관의 「고래」, 정유정의 「7년의 밤」 이었다. 뭐라더라, ‘2000년대에 나온 가장 재밌는 소설’ 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다음 날 도서관으로 갔다. 처음으로 회원카드를 만들고 앞의 두 책과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를 빌렸다. 어땠냐고? 새벽까지 다리를 덜덜 떨면서,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