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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씁니다
그녀가 허리를 숙였을 때 마스크 틈으로 그녀의 코와 입술이 보였다. 넋 놓고 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서둘러 눈을 돌린다. 눈동자가 한 바퀴를 돌아 그녀에게 향했을 때,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들켰다.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당연히 도망쳤지. 훔쳐보다 걸리면 종신형인 거 몰라?” 당황해서 눈이 마주친 채로 1초 동안 그대로 있었다. 아주 위험하고 바보같은 짓이었다. 내가 훔쳐봤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었다. 머리 위에서 종소리가 울리고 문이 열렸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문 밖으로 뛰었다. 내가 내려야 할 역까지는 아직 더 가야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나는 범죄 현장을 벗어났다. 시퍼런 피가 묻은 손을 닦아야 하지만 적어도 현행범 체포는 면했다. 그런데 이런 중대한 범죄를 ..
‘1시간 10분’ 대충 예상한 시간이다. 환승할 필요도 없고 날씨도 좋아 선택한 버스. 하지만 그 긴 시간 때문에 가져온 책도, 창밖도 보지 않는다. 자리가 생겨 앉자마자 유튜브를 꺼냈고 자연스럽게 알고리즘을 따라간다. 하긴, 차 안에서 책을 보다 어지러워 멀미가 났던 경험이 있다. 책은 이따 지하철을 타며 보기로 했다. 창밖, 처음 보는 비슷한 건물들의 연속일 뿐이었다. 하는 수 없이 유익한 영상시청 시간을 만들기로 한다. 그러나 결국 이미 봤던 영상들에까지 손을 뻗는다. 2년 전에 개봉한 영화 의 하이라이트 액션 영상까지 클릭하게 되었다. 액션을 하는 주인공의 배경 속 조연들 몸짓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썼는지, 힘을 숨기고 있던 주인공들의 모습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장르적으로 표현했는지를 평가할 생각에..
한양대역에서 2호선을 타고 건대 방향으로 향하면 곧장 땅 위로 올라온다. 내가 타고 있는 이 기계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지하철? 전철? 기차? 지하철이라고 하자니 땅 위로 나오는 시간이 분명 있고 전철은 구한말을 위한 단어로 남겨둬야 할 것 같다. 기차는 남한 땅 정도 되는 넓은 땅을 다녀야 하지, 수도권으로 만족할 수 없다. ‘그나마 전철이 제일 나으려나.’ 생각하던 차에 잠실을 지나며 다시 땅 밑으로 내려왔다. 지하철?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하며 서울에서 생활한지 벌써 5년이 지났다. 이제 스스로를 서울 사람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1년 중 대부분의 시간을 서울에서 보낸다. 고향인 포항에 내려가면 친구도 몇 안 남아 있고 할 일도 없다. 그런데 여전히 그곳에 계신 내 부모님, 우연히 경상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