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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씁니다
2018.09.XX 늦은 답장을 써보려한다. 이제서야. 그래보려 한다. 헤아려보니, 달을 넘기고도 보름 즈음이 더 지났다. 네 편지를 받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굳이 바빴다거나, 그래서 겨를이 없었거나 하는 핑계를 댈 생각은 없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저 ‘답장을 쓸 수 없는 마음만이 가득 차 있는 시간을 보냈다.’ 라는 말 뿐이다.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질량을 품은 듯 무거운 펜은 편지지 위에 단 한 획조차 써 내리지 못하게 했다. 획이 더해질수록 펜의 무게보다 더한 중력이 내 마음을 짓누를까 두려웠던 것 같다. 겨우 막아놓은 댐이 무너지듯, 한 획 한 획에 굉음을 내며 무너질 슬픔이 두려웠다. 한번 터진 슬픔은 도저히 통제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1. 꽤 아득한 과거처럼 느껴지지만, 지금처럼 온라인이 아닌 교실에서, 사회적 거리 따위는 신경 쓰지 않으며 수업을 들을 수 있던 때가 있었다.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꼭 들어야 하는 전공 수업들 이외에는 다양한 분야의 수업을 들으려고 노력했다. 특히 대학생 딱지를 붙인 지 몇 학기 지나지 않았을 때까진, 전공은 경제학이지만 음악을 하겠다 마음먹은 나의 시간표엔 ‘문학’과 ‘철학’이 들어간 강의가 빠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마음으로 아무 노래나 만들고 싶지 않았다. 노래를 발표한다는 것은 책을 출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남는 흔적이 생기는 것이니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부끄럽지 않았으면 했다. 그럼에도 졸작을 내어 놓은 부끄러움을 떨칠 수 없지만, 서툴고 어리숙했을지언정 최선이었다는 마음..
♬ blue room- chet baker "쳇 베이커가" 친구가 입을 연다. “뭣 땜에 인생이 꼬인 줄 알아?" 나는 고개를 젓는다. "약. 약쟁이들은 멈춰야 할 때를 모르잖아.“ 아홉시 오십분. 첫 잔은 볼 안쪽과 위 속을 지져댄다. 지금은 세상의 물기가 말라서 맑아진 겨울, 잔인하게 추웠고 하늘은 빛을 벗겨냈으며 도시는 어둠으로 목욕 중. 검은 인조 장갑을 옆에 두고 우리는 홀짝인다. 와드득 깨물어 먹고 두툼한 것을 베어서 씹는다. 술을 비우고 반항기로 가득 찬다. 친구는 음악을 안다. 존 콜트레인이, 토니 버넷이, 마일즈 데이비스가, 마이클 잭슨이, 존 메이어가 얼마나 위대한지 떠든다. 왜 양희은이 우리나라에서 보물 같은 가수인지, 왜 백예린이 위대한 가수가 될 것인지 말해준다. 나는 그가 앨범에..
돌아보니, 시작은 ‘동경’이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동경은 두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데, 각각은 다음과 같다. 동경(憧憬) · (명) 어떤 것을 간절히 그리워하여 그것만을 생각함. · (명) 마음이 스스로 들떠서 안정되지 아니함. 나의 마음은 2번에서 1번으로 흘러갔다. 모든 마음을 빼앗겨, 내 힘으로는 그것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일을 할 때에도, 누군가를 만나고 있는 순간에도, 잠이 쏟아져서 더 이상은 눈꺼풀의 무게를 견딜 수 없을 때를 제외한 모든 시간에 내 마음은 그 곳에 가 있었다. 그 곳을 ‘음악’이라고 이야기해왔다. 유순한 성격 덕에 좋아라 했던 중학교 친구를 다시 만난 20살에 그 친구가 만든 노래를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그 위상이 갑자기 ‘동경의 대상’이 된 내 친구는 하고 싶은 ..